<신춘중앙문예>희곡 당선작 "남자 파출부"下.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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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아들:(파출부 바라보다 잠시후)내가 괴팍한지 안한지는 어떻게알지? 파출부:(장난기가 어려)얼굴에 쓰여 있는데요,뭘.
아들:하지만 어쩌겠나.칼자룬 여자가 쥐고 있는데.
파출부:머리를 쓰셔야죠.머리를.남의 마음의 병만 고치면 뭐해요.자신의 병부터 고쳐야죠.(컴퓨터 자막을 바라보며)좋은 수가있습니다.
아들:좋은 수? 파출부:(고개를 천천히 끄덕이며 계속 자막을바라본다) 아들:(컴퓨터에서 파출부로 고개를 돌리며)납치? 파출부,고개를 계속 느리게 끄덕인다.
안될 말! 파출부:될말!실수,실수만 없으면요.그래서 여성분 마음을 되돌리면 되잖아요.몸과 마음 모두.
아들:이제 그여자 기다리기도 지쳤어.(잠시후)몸과 마음 모두.보통 한 두시간은 기본이지.그렇게 기다려서 만나면 얼굴 마주대하고 있는 시간은 고작 30분.쭉 그랬어.그래도 오징어순대를먹는 날이면 30분인 걸 다행으로 여기지.(잠시 후)난 자신없어.그러다가 실패하면…(쉬었다가)아니 내가 지금 무슨 소릴하고있는거야.쓸데없는 소리 말고 잠이나 자지.
파출부:말이 납치죠.제말은 여자와 조금 오랜 시간을 가질 뿐이죠.그것도 제발로 걸어와서요.
아들, 말도 안된다는 듯 고개를 살래 흔든다.
아무튼 나는 오늘 일당을 약속 받았죠.이 집에 오늘 하루는 더 있을 수 있구요.그 여성분이 사는 곳은 어디죠? 두 사람,마주보고 어두워짐.
여자,화가 난 얼굴로 아들집 소파에 앉아있다.탁자 위에 있는신문을 집어 부채질을 하고 있다.파출부,앞치마 두르고 음료수 갖고 등장.
파출부:꽤 열을 받으셨군요.자,이것 좀 드세요.
여자:도대체 이집 아들은 언제 오죠? 파출부:곧 오실 겁니다. 여자,음료수를 마신다.듣던대로군요.사귀는 분이 꽤 미인이시라는데. 여자:미인? 여자가 있으면서도 나를 만나?(한 손으론물마시고 다른 손으론 부채질한다) 파출부,미소지으며 부엌으로 간다. 여자,백에서 카드를 한장 꺼낸다.
뭐,축전.그 돈 많고 괴팍한 노인네와의 결혼을 축하한다구? 나도 곧 결혼하게 될 거다? 그러니 서로 축하하자? 사실은 어제 마지막 인사를 하러 나갔던 거다? 무언가 내가 오해를 한 것 같다구? 아유 분해.치맛자락을 잡고 매달려도 한 번 만나줄까 말까 한데.뭐,오해? 이 때 초인종 소리 들린다.
파출부:네 나갑니다.아,어서 오세요.
아들 급히 등장하며 말한다.
아들:대체 어찌된 일인가? 파출부:(거실을 가리키며)보시는대로죠. 여자,아들보자 요란하게 일어난다.
아들:아니 이 여자가 어떻게 이곳을….(걸어가며)아무튼 와줘서 고마워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여자,아들의 따귀를 때린다.카드를 아들의 발아래 던진다.남자,주워 읽는다.
파출부:납치는 절대 아니죠.좀 공갈을 쳤을 뿐.
여자:납치? 공갈? 아들:(쩔쩔매며)진정해요.그리고 좀 앉아요.모두 우리집 파출부가 했나봐요.나를 위해서라고 할 수 있죠.그러니 화를 풀어요.
여자:화를 풀라구요?(파출부와 아들을 번갈아 본다)괴물!여긴괴물들만 사는군.가겠어요.
파출부:(팔을 벌려 막으며 천천히 말한다)들어올 때는 맘대로들어왔지만 갈 때는 안되죠.
여자:이제 협박까지 하는군.
파출부:(애교스럽게)그래요,깜찍한 협박.(부엌을 가리키며)오징어 순대가 어여쁜 숙녀분의 입속에 들어가길 간절히 바라고 있는데요.어때요,저의 거래? 여자:당신이 그걸 요리했다구요? 파출부:네,우리 주인님이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죠.
아들,헛구역질한다.
여자,부엌쪽을 보며 꽃을 발견한다.파출부,여자의 흔들림을 알아채고 먼저 부엌으로 간다.
두 사람,따라 들어온다.
파출부:어서들 들어오세요.이 꽃은 어제 주인님께서 사오신 거죠. 여자,식탁에 앉으며 꽃을 만진다.
파출부,아들에게 눈짓한다.
아들:제가 좋아하는 꽃이죠.이름은 「첫사랑」첫사랑이죠.
여자:첫사랑.
(방백)난 사랑이 뭔지 아직도 몰라.남자들의 등쌀에 느낄 새도 없어.누가 나를 사랑하는 지도 모르겠어.사랑을 느낄 수만 있다면,그런 감정을 가져볼 수만 있다면….
두 남자,넋나간 듯 여자를 바라본다.
뭘 보죠? 꽃,꽃은 흔해빠진 거예요.더군다나 저런 들꽃은.
파출부:맞아요,사실은 제가 사다놓은 꽃이죠.촌스럽기 이를 데없죠.어서 오징어 순대나 드시지요.
여자,놀란다.파출부,식탁에 음식을 차린다.
맛 좀 보세요? 여자:(못이기는 척 먹는다.)음,우리집 파출부보다 솜씨 좋으시네.(아들을 보고)왜 안먹죠? 아들:(난처해하며)당신이 먹는 모습만 봐도 배가 불러요.
파출부:(재빨리)제가 대신 먹어드리죠.전 우리 주인님의 먹지도 않고 배부른 모습만 보면 저절로 배가 고파지거든요.
여자:(잠시후)아,잘 먹었어요.이젠.
파출부:(말 막으며)후식은 주인님의 방으로 들여보내죠.
아들과 여자 서로 쳐다본다.
아들방으로 두 사람 들어온다.
침대 위에 선물꾸러미와 카드가 놓여 있다.
아들:(카드를 본 후,여자에게 건넨다) 여자:이게 뭐죠?(읽어본다) 아들:선물은 직접 풀어 보세요.그게 더 재밌잖아요.
여자,내키지 않는 듯 풀어본다.
꾸러미 속엔 갖가지 귀여운 것들이 들어 있다.
여자,감탄스러운 빛을 띤다.
아들:맘에 드세요? 고르느라고 골랐는데.
여자:(하나씩 꺼낸다)초콜릿,캔디,인형,껌,휴지(웃는다),손수건,귀걸이,팔찌,시집,사진?(아들의 사진이다.여자,남자의 얼굴에 사진 대볼 때 파출부 등장)연애를 많이 해본 솜씨같군요.
이런 간지러운 수법 도대체 몇 번째죠? 아들,파출부가 가져온 음료를 들이마신다.
파출부:(못마땅한 듯)세번째죠.다른 여자들은 다 통하는데….
아들,어쩔줄 모른다.
여자:귀신,귀신이 따로 없군요.(일어난다) 파출부:참,주인님.이런 땐 음악을 틀어야죠.(음악을 켠다) 여자:음악이고 뭐고. 아름다운 음악이 흘러나온다.파출부,여자에게 차를 건넨다.여자,차를 마시며 음악을 감상한다.음악에 젖어든다.
아들:(말할 기회를 찾다가)잠들기 전엔 늘 이 음악을 듣죠.
어떠세요? 파출부:(여자가 대답이 없자)좋은데요.
여자:(정신을 차린 듯)음악은 사람을 나약하게 만들죠.마치 최면을 걸듯이요.이런 음악은 더더욱.딱 질색이죠.
파출부:(음악 테이프를 꺼낸다.빈정대며)사실 주인님은 이것이저기 꽂혀 있는지도 몰랐죠.
여자:(분한 듯)라이터돌만한 게… (아들을 보고)저 귀신 몇살이죠? 파출부:부싯돌보단 낫군요.당신보다 세 살 아래,애교죠.안그래요? 여자:사기꾼.절,절 도대체 언제까지 이곳에 가둬둘거죠? 아들,계속 난처해 하고 초인종 소리 들린다.
파출부:누가 오셨나보군요.
파출부 퇴장,어두워짐.
***〈제8장〉 거실.
아버지 들어오고 아들방에서 여자 목소리 크게 들린다.
아버지:여자 목소리 아니야.내일 온다고 했는데 여행갔다 벌써왔나. 여자 오고 아들 뒤따라 나온다.여자,아버지 앞에서 멈춘다. 여자:이분의 아버님 되시나요? 아버지:오,숙녀분.그렇소마는. 여자:아드님이 절 잡아놓고 못가게 해요.협박을 한다구요.
아버지:저런,협박.어떻게 협박을 했지? 여자:(목소리 점점 작아짐)꽃으로요.첫사랑이란 꽃.오징어 순대로요.맛은 있었죠.선물로요,초콜릿.캔디.휴지…음악으로요.달콤한 음악으로요.
아버지:(재미있다는 듯)굉장한 협박이군.내 아들이 그런 끔찍한 인질극을 벌였다니.
초인종 소리,급하게 들린다.「문열어,문열어」란 고함소리와 함께. 이크,경찰이 온게 아냐? 남자,등장.여자를 발견한다.
남자:오,아가씨.여기있었군요.아무리 기다려도 안오시길래 집에전화를 드렸더니 이놈의 카드를 받고 나갔다더군요.(아들을 보며비웃듯이)뭐라고 꼬셨나.
아들:뭐 꼬셔.
아들,점점 기막힘이 커져가고 남자는 점점 아들의 화를 돋운다. 남자:뭐라고 공갈을 쳤냐구? 아들:난 태어나서 그런 말 처음 들어보는데.
남자:그렇겠지.자칭 고상하다고 여기는 자니까.
아들:뭐,자칭 고상.
남자:(얼굴에 대고)그래.자 칭 고 상.
아들:그럼,당신은 당신은 뭐야.
남자:뭐,당신.
아들:그래,당신.나이 들어 겨우 한다는 짓이 돈으로 남의 판이나 깨려고 하고.
남자:판은 누가 깼는데.니가 내 판을 깼잖아.(아들의 멱살을잡는다)니가 뭔데 내 공들인 탑을 무너뜨려? 아들도 멱살을 잡는다.여자,두 남자 쳐다보다 등을 돌리며 고개숙인다.파출부,여자의 뒷모습을 응시한다.
파출부:(두 남자의 멱살을 푼다)아,이 분이 바로 돈으로 여자 튕기는 분! 아니,돈으로 여자를 공들이는 분! 남자:넌 또뭐야? 파출부,무슨 말인지 모른다는 시늉을 한다.
뭐냐니까? 너도 이 여자 찾아온 작자냐? 아들:전문인 파출부요. 남자:전문인? 전문인 파출부?(크게 웃는다) 아버지:아유,어지러워.그만,그만.다들 내 집에서 썩 꺼져.숙녀분은 나가시고. 파출부:무슨 말씀을요.선택을 해야죠.이제는 숙녀분께서 남자를 선택해야 된다구요.
여자,선택이란 말에 고개를 든다.모두들,여자 쳐다본다.여자,천천히 몸을 되돌린다.조명,여자 얼굴 비추다가 어두워짐.
***〈제9장〉 거실.모두 앉아있고 파출부만 서있다.
파출부:문제는 제가 내죠.아저씨는 심판을 보시구요.(아버지,고개 끄덕인다)그럼 삼세판으로 하죠.자,시작합니다.첫번째 질문.두 분 중 누가 아가씨를 한 곳에서 더 오랫동안 기다렸죠? 보충 설명.이 질문은 아가씨의 자만심을 충족시키기 위한 것이죠. 여자와 파출부,눈이 마주친다.잠시후.
남자:3시간.
아들:8시간.
남자:아니,8시간30분.
아들:어떨 땐,아예 안나타난 적도 있죠.
아버지:(아들을 가리키며)이쪽,한판.
남자:이건 엉터리야.
파출부:아아,조급함은 자신이 없다는 뜻이죠.질문은 아직도 더남아있습니다.두번째 질문.두 분 중 누가 재산이 더 많죠? 보충 설명.이 질문은 아가씨의 사치충족을 위한 거죠.
여자와 파출부,다시 눈이 마주 친다.
남자:난 현금으로 10억,건물이 세 채,별장이 두 채,지금 사는 집은 3층짜리,땅이 3만평,또,아,그만 하지.
아들:(힘없이)난 현금으로 1천 정도.집,집은 입주예정인 아파트가 있고.
아버지:이 집도 다 니다.두번째 질문.두 분 중 누가 재산이더 많죠? 보충 설명.이 질문은 아가씨의 사치충족을 위한 거죠. 여자와 파출부,다시 눈이 마주 친다.
남자:난 현금으로 10억,건물이 세 채,별장이 두채,지금 사는 집은 3층짜리,땅이 3만평,또,아,그만 하지.
아들:(힘없이)난 현금으로 1천 정도.집,집은 입주예정인 아파트가 있고.
아버지:이 집도 다 네게 주겠다.
파출부:뇌물은 사절입니다.
아버지:(마지못해)이번엔 저쪽이 한 판.
여자:(불쾌하게)그만! 그만 하세요.제 남자는 제가 정해요.
파출부:그래요,그게 가장 간단하고 좋은 방법이겠군요.지금까지무승부니까 모두 무효로 해도 별 이의없겠죠.
두남자,고개 끄덕인다.
(여자를 보며)어서 정하시죠.
모두 긴장한다.여자,고개를 돌려 벽에 걸려있는 사진을 쳐다본다. 여자:참 다정해 보이시는군요.
아버지:그래,난 그녀를 사랑하지.
여자:(짐작가는 듯)근데 지금 아줌마는 어디 계시죠? 아버지:어… 여행중.
여자:아줌만 아저씨보다 세살 위라고 들었어요.
아버지:음.그렇지.그건 애교지.
여자:그래요.세살,세살 차이로 정하죠.
남자들,「세살차이」를 합창한다.
아들:아,그러면 나.나,나예요.아버지.
여자:아니요.아래로 세살.
남자들,「아래로 세살」을 합창한다.
파출부:이 두 분중에 세살 연하는 없는데요.여자와 파출부,눈이 마주친다.
남자들,일제히 파출부를 바라본다.
파출부:(당황하여)그럼,나? 여자:(당당히)그래요.(빠르게)괴물같고 귀신같고 사기꾼같은 이 집의 귀염둥이.전문인 남자 파출부요.바로 당신과 첫사랑을 나누고 싶어요.처음으로 사랑을.
파출부:난,난 안될 말.
여자:(적극적으로)될 말이죠.난 당신을 보며 사랑이란 걸 봤어요.난 어쩌면 영영 사랑이란 단어가 이 세상에 있구나 하고 그저 지낼 뻔했죠.그냥 그럭저럭 살 뻔 했다구요.근데 난 오늘에서야 사랑을 깨달았죠.아,내 마음이 왜 이렇게 떨려오죠.(파출부와 서로 쳐다본다)금방 달아나 버릴 것만 같아요.
잠시 침묵이 흐른다.아들,파출부에게 엄지를 들어 축하해 준다.남자,기가 막혀 하고 아버지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인다.
파출부:돈을 벌면서 여자까지 벌게 될 줄은 몰랐는데….미안해서 어쩌죠.(여자에게 손 내민다.여자,손잡고 파출부 옆에 선다)자,우린 이만 가지요.참,주인님께 한가지 좋은 제안을 드리죠.좀 비싸지만 여자 파출부 쓰는 것이 어때요? 〈 막〉 고옥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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