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1만불시대의문화>6.끝.영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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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세계 영화사에서 가장 지루한 영화를 만드는 감독을 꼽으라면 단연 타르코프스키다.그의 유작『희생』이 올봄 코아아트홀에서 개봉됐을 때 3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리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이 현상은 1인당 국민소득 1만달러시대의 영화소비 행태를가늠케 하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요즘은 흥행이 안되는 걸로판정이 난 아트필름도 분위기만 잘 타면 5만이상 관객을 동원할수 있다.그만한 수요층이 생겼다는 얘기다.
이 매니어층의 행동은 특이하다.어떤 아트필름에는 연애하듯 애정을 보이지만 비슷한 수준의 다른 작품은 차갑게 외면하기도 한다.이들은 자신들끼리 통용되는 문화적 바람을 만들어 낸다.타르코프스키처럼 영화사를 통해 지겹게 이름을 들은 감 독의 영화에는 무리지어 몰린다.그러나『정복자 펠레』처럼 문화적 패션을 못타면 100명도 채 안되는 관객을 앉히고 영사기를 돌려야 한다. 최근 왕자웨이(王家衛)의 열풍은 대표적인 문화적 패션이다.
왕자웨이는 대중적이지만 홍콩감독으로선 처음으로 예술.영화적 요소를 가미한 인물이다.
이같은 문화적 패션의 득세는 감독과 관객의 미세한 정서적 대화를 요구하는 아트필름 시장에도 그대로 통용된다.아트필름 수요층이 훨씬 폭넓은 유럽보다 『희생』이 더 많은 관객을 동원한 것은 거기에 몰표를 주기 때문인 듯하다.자기의 정 서적 색채에맞는 작품의 선별적 감상보다 감상행위 자체를 즐기는 소비층의 형성.주체적 문화소비로 나아가기 위해 겪어야 하는 소득 1만달러 시대의 통과제의 같은 것일까.
남재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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