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중앙문예>단편소설 당선작 심사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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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예심을 거쳐 본심에 넘어온 작품은 11편이었다.
쓸데없는 의성어의 남발,치기만만한 독백투 문맥,구성을 제대로못 얽어 불필요한 격행(隔行)의 빈발 등을 지적함으로써 작품의우열이 손쉽게 드러났다.다음의 네 작품이 심사대상으로 떠올랐다. 『철탑』은 전기공의 힘겨운 삶과 풋풋한 우정을 그린 이른바노동현장소설이다.드문 소재에 걸맞게 생생한 현장감을 획득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파랗게 멍든 미소」같이 의미가 불확실한 묘사는 시정해야 마땅하며,한 동료가 철탑에서 떨어져 죽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그 인과(因果)의 구체성이 현격히 떨어졌다.
『찰리 옷을 벗다』는 젊음의 이유있는 방황을 조명한 작품이다.문학의 제도화에 대한 나름의 주목에는 빛나는 메시지가 많다.
그러나 어순을 아무렇게나 헝클어뜨리는 문장감각도 단점인데다 그시점(視點)을 1인칭과 3인칭으로 대별해버린 목 적이 무엇인지납득하기 어려웠다.
『은행나무 위를 흐르는 마네킹』은 그 선명한 주제의식이 단연돋보인다.
컴퓨터 그래픽 디자이너가 색채식별 결핍증에 걸림으로써 모든 사물이 흑백으로만 보인다는 아이디어는 추상화한 세계에의 의미부여,나아가 존재의 불확정성과 그 상실감에 대한 심각한 천착으로읽혀진다.화자의 실직과 아내의 가출로 빚어지는 일련의 파행경과는 현대사회의 팍팍한 한 축도로서 무리가 없다.
그렇긴 해도 아내가 가출하는 동기에 어떤 절박성이 깔려있지 않다.또한 화자가 백화점에서 마네킹을 끌어안는 마지막 해프닝에는 인간의 사물화 경향에 대한 작가의 설득력이 치열하지 못한 듯하다. 이 세상을 한폭의 추상화로 볼 수 있다는 발상 자체가이미 피상성을 뛰어넘고 있지만 그런 세상이 곧 가짜는 아니다.
덧붙인다면 관념어를 적절히 구사하지 못하는 허물도 있다.
『알람 시계들이 있는 사막』은 닫힌 상황,희망없는 기다림,과거에의 끈질긴 집착,덧없이 흐르는 시간에의 쫓김,함의(含意)많은 말놀이 등등의 조작을 한껏 과시한 실존주의 소설의 한 전형을 힘있게 형상화시키고 있다.꽉짜인 단막극을 보고 난 듯한 독후감이 여실하다.
한산한 레스토랑 안으로 공간을 제한한 것도,짤막한 시간의 경과를 첫머리에 제시한 것도,사진.시계.금붕어.담배 따위의 소도구들을 적당히 활용한 것도,저마다 쫓기는 소수의 등장인물들이 실존의 결핍감을 주거니 받거니 함으로써 개성화에 이르는 구도도깔끔하다.
욕심을 부리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작가의 세계관을 오롯이 부각시켰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비록 그 독자성이 비치지는 않지만꼼꼼한 현재형 문장도 나무랄 데 없다.그러나 이 모범답안 같은작품에도 다소 미숙한 대목은 있다.꽉막힌 상황 에 숨통을 틔어주려고 그랬는지 손님을 찾으러 뛰어든 한 청년의 소동이 이 작품의 싱싱한 주제의식을 결과적으로 흐트러놓고 있는 것이 그것이다.작품의 완성도를 따질 것도 없이 그것은 군더더기다.하지만 대안없는 인생의 미망을 찬찬히 포착 해가는 이 작가의 기량은 비범한게 분명하다.
당선작으로 손색이 없다.모쪼록 소성(小成)에 만족하지 말고 쉼없이 소설공부에 정진을 거듭하기 바란다.당선을 축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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