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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에 전화 걸어 다짜고짜 “광고 빼, XX야” … 얼굴 없는 테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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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지난 16일 밤 촛불집회 참가자 중 100여 명이 서울 순화동 중앙일보 본사로 난입해 출입문에 특정 언론 불매 스티커를 붙였다. 시위대는 이날 30여 분간 시위를 벌였다. [사진=조용철 기자]

“모든 신문에 똑같이 광고를 내고, 광고 효과를 얻으려고 광고를 낸다고 설명해도 전혀 통하지 않네요. 콜센터는 물론 홍보실에까지 다짜고짜 ‘광고 빼, XX야’라며 막말과 욕설이 범벅이 된 협박전화가 하루 수십, 수백 통씩 걸려와 업무가 마비될 정도입니다.”

미국산 쇠고기 파문 이후 일부 네티즌들이 무차별적으로 벌이는 신문광고 중단 및 제품 불매 압박 공세에 열흘 넘게 시달린 한 대기업 홍보 담당자는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협박에 시달리는 기업들은 하나같이 중앙·조선·동아 등 유력 일간지에 광고를 내 온 업체들이다. 규모와 업종을 가리지 않고 웬만한 기업들은 거의 대부분 크고 작은 협박공세에 시달린다. 개중에도 규모가 작은 중견·중소업체들의 피해가 더욱 막심하다. 몇몇 중소업체들은 이들 신문에 광고를 냈다가 받은 협박전화 공세를 견디지 못하고 홈페이지에서 ‘특정 언론 광고를 중단하겠다’는 서약서를 띄우는 수모도 겪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대한상공회의소 등 경제 5단체가 18일 일부 네티즌들의 행태에 문제를 제기한 것은 업계를 겨냥한 이런 위협이 자유시장경제의 근간을 흔드는 ‘사이버 테러’와 다름없다고 판단한 때문이다. 전경련 관계자는 “가뜩이나 고유가와 원자재 가격 급등, 화물연대 운송 거부로 어려움이 큰데 일부 네티즌의 기업 협박은 도를 넘어섰다.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어 경제단체들이 집단으로 나서게 됐다”고 설명했다.

‘전화 항의 부대’는 특정 시간에 맞춰 집중적으로 전화를 걸거나 특정 기업의 약점을 노골적으로 건드리며 기업 숨통을 조직적으로 죄고 있다. “오전 10시와 오후 4시 전후에 고객센터로 항의전화가 몰려요. 협박 내용도 천편일률적으로 ‘중·조·동에 광고를 계속 내면 가입회사를 바꾸겠다’는 내용이지요. 업계 특성상 번호이동이 잦기 때문에 은근히 걱정도 됩니다.”(이동통신업계 관계자) B기업 관계자는 “협박 전화가 조직적으로 걸려 온다는 판단이 들어 전화를 걸어 온 이들의 목소리를 녹음하고 전문가에게 의뢰해 조사해 보니 중·고교생은 물론 초등학생까지 끼어 있었다”고 놀라워했다.

광고업계도 큰 혼란에 빠졌다. 특정 기업들을 노린 ‘전화 테러’가 잇따르자 여타 소비재를 만드는 중소기업들도 덩달아 광고 계획을 취소하거나 중단을 고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광고기획사 관계자는 “ 대기업들은 당장 매출에 큰 타격을 입는 것이 아니고 쌓아 놓은 이미지도 있어 견딜 만하다. 하지만 중소기업은 체감 압력이 다르다. K제약·L스포츠·B식품 등은 벌써 광고 물량을 줄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이런 가운데 중·조·동을 겨냥한 광고 중단 협박이 엉뚱하게 신문업계 전체를 고사시키는 쪽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 대기업 광고 담당은 “대다수 기업들은 광고 효과가 높은 메이저 신문에 광고를 내지 못할 경우 아예 케이블TV나 온라인으로 광고 물량을 돌려 버린다. 특정 네티즌의 의도와 달리 중·조·동보다 상대적으로 작은 신문들이 더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글=표재용·김창우 기자, 사진=조용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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