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채 중 진짜 빚은 449억 달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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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최근 외채위기론이 고개를 들자 한국은행이 조기 진화에 나섰다. 17일 한은은 예정에 없는 외채 동향 설명회를 하고 외채의 증가세가 하반기엔 진정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날 설명회에서 이광주 부총재보는 “소문이 소문을 낳아 잘못된 방향으로 가지나 않을까 해서 설명하는 것”이라며 “외채의 구조를 뜯어 보면 과민반응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자본 자유화와 금융산업 발달로 외국 자본의 투자가 늘었기 때문에 통계상 외채로 잡히는 돈이 느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라며 “지난해 새로 불어난 외채 1221억 달러 가운데 진짜 빚의 성격을 지닌 것은 3분의 1 정도”라고 지적했다.

예컨대 지난해 외국인들이 국내 채권을 288억 달러어치 사들인 것이나, 수출 제품을 인도할 때까지 채무로 잡히는 무역신용이 130억 달러 증가한 것 등은 우리가 갚아야 할 빚과는 성격이 다르다는 얘기다.

이런 분류에 따르면 최악의 경우 우리나라가 외환보유액을 동원해서라도 막아야 할 외채(지난해 증가분 기준)는 국내 은행이 차입한 118억 달러, 국내 기업이 발행한 외화증권 252억 달러 등을 합쳐 모두 449억 달러다. ‘빚 다운 빚’은 지난해 외채 증가액 1221억 달러의 36.8%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 부총재보는 “해외 차입 금리가 높아진 것은 외채 때문이 아니라 국제금융시장의 경색에 따른 영향이 크다”며 “국제시장에서 우리의 외채를 문제시하는 시각은 아직 없다”고 덧붙였다.

현재 한은은 하반기 외채 증가세가 주춤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 외채가 급증한 주요 원인이던 조선업체들의 선물환 매도와 외국인들의 국내 채권 투자가 크게 늘진 않을 것이란 예상에 따른 것이다. 한은은 조선 수주 물량이 지난해 1015억 달러에서 올해 950억 달러로 줄 것으로 전망했다.

이에 따라 안병찬 국제국장은 “우리나라가 순채무국이 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3월 말 현재 우리나라가 해외에 갖고 있는 채권에서 대외채무를 뺀 순대외채권은 149억5000만 달러로 지난해 말(355억3000만 달러)에 비해 205억8000만 달러나 줄었다. 이 때문에 정치권에선 우리나라가 곧 순채무국으로 전락해 외환위기 직전과 비슷한 상황에 놓일 것이라는 위기론이 나오기도 했다. 

남윤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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