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司正 한파'의원 外遊 꽁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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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연말연시마다 성시(盛市)를 이루던 국회의원들의 외유(外遊)가올해는 한겨울 날씨마냥 꽁꽁 얼어붙었다.한 중진의원 말처럼 『세상이 하도 뒤숭숭해 도저히 옛날처럼 외국에 나다닐 처지가 못된다』는 것이다.
물론 내년4월 총선을 준비하려면 밖으로 나다닐 시간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그러나 이보다는 사정정국의 분위기가 의원들을 움츠리게 하고 있다.
지난해는 60여명이 연말에 외국으로 떠났다.그러나 올해는 중국측의 공식초청을 받은 황낙주(黃珞周)국회의장과 수행의원 7명뿐이다.공식초청인데다 국비(國費)로 나간다는 점을 고려할때 「노는 여행」과는 거리가 멀다.
내년 1월초 국회 예결위 소속 의원들이 선진국 예.결산 활동자료를 모으기 위해 캐나다와 호주를 돌아볼 계획이 잡혀있는게 일정의 전부다.그나마도 사정정국 때문에 갈수 있을지 의문이다.
의원들의 연말연시 외유는 일종의 보상적 성격이 강했다.100일간의 기나긴 정기국회가 끝나면 정치동면기가 되기 때문에 휑하니 외국으로 뜨곤 했던 것이다.명분이야 시찰이니 조사니 연구니그럴듯한 것이었다.
VIP들의 외유가 연말에 한꺼번에 몰리다 보니 공항관계자들은비행기좌석을 마련하느라 곤욕을 치러야 했다.
일부 의원들의 사치성 외유는 여론의 질타를 받았지만 그러거나말거나 의원들은 외국여행을 즐겨왔다.
올해는 사정이 다르다.외유도 좋지만 이 와중에 밖에 나갔다 아예 낙오될지도 모르는 「안개정국」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연말연시에 3~4일 짬을 내 외국을 다녀오려다 결국 취소한 신한국당(가칭)의 한 의원은 『겁이 나 못나가겠다』고 했다.자리를 비우기가 불안하다 못해 겁이 난다는 얘기다.
부부동반 여행을 취소한 야당의 한 의원은 『사정정국이 시작되면 당이 총력 대응해야 된다』고 이유를 들었다.
전국구 의원들조차 외국행 발길을 뚝 끊은것도 특징이다.지역구의원들이야 연말 지역활동이라도 한다지만 전국구 의원들에게 연말연시는 황금연휴였다.그러나 지금은 모두가 잔뜩 웅크리고 있다.
검찰은 전두환(全斗煥).노태우(盧泰愚) 두 전직대통령의 비자금을 계속 헤집고 있고 불똥이 어디로 튈지 아무도 모른다.
혹시 외유기간중 엉뚱하게 구설수에 휘말리면 해명 한번 제대로못하고 된서리를 맞을수도 있다.요즘 정국에선 소문에 오르내리는것만으로도 정치생명에 치명적이다.
하지만 검찰수사를 예의 주시하면서 유권자들 만나려 뛰어다니고공천 때문에 노심초사(勞心焦思)해야 하는 의원들에게 이래저래 이번 겨울은 몹시도 춥다.
김종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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