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달아 높이곰 돋아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3면

코펜하겐의 카스트럽 공항을 한시간 간격으로 떠났다.우변호사는도쿄로,아리영은 암스테르담을 거쳐 서울로-.
서울~코펜하겐 직항편은 없다.그래서 우변호사는 서울~도쿄~코펜하겐 왕복표를 끊어 주었던 것인데 아리영은 돌아오는 비행기표를 암스테르담에서 갈아 타 서울로 가는 편으로 바꿨다.업무차 도쿄로 가야 하는 우변호사와 동행하는 것이 어쩐지 꺼려졌다.코펜하겐서 도쿄까지는 11시간50분.암스테르담으로 돌아 서울까지가자면 비행시간만 14시간10분.훨씬 길고 번거로운 코스였지만굳이 그 편을 택했다.몇 시간이라도 더 함께 있고 싶은 생각은간절했으나 도쿄로 가는 비행기엔 더러 한국 사람도 있을 것이다.우변호사에게 누를 끼치는 일은 하기 싫었다.
「유럽 하늘의 로터리」라는 카스트럽 공항은 드넓었고 여객도 그만큼 많아 붐볐다.
『전화하겠어요.…몸조심해요.』 우변호사는 먼저 떠나는 아리영의 손을 꼭 쥐며 작별의 말을 했다.아리영은 이를 악물고 출국게이트로 들어섰다.언제 또 만나게 될지….
우변호사가 끊어 준 표는 퍼스트 클라스였다.나란한 자리에 먼저 와 앉아있던 서양남자가 아리영을 보자 얼른 일어섰다.창가 자리에 아리영이 좌정할 때까지 그는 예의 바르게 서있었다.
50대 초반쯤일까.은회색 슈트에 검보라 넥타이가 잘 어울려 보였다.훤칠하게 키가 크고 하얀 살결에 금발인 것으로 미뤄 북유럽계인 듯했다.
『만나뵙게 돼서 반가워요….』 아리영의 상냥한 인사말에 신사는 생기얻은 표정으로 자기 소개를 했다.코펜하겐에서 수산물 무역을 하는 덴마크인이라며 아리영더러 일본인이냐고 물었다.아니라고 하자 그럼 중국인이냐고 했다.거듭 아니라니까 「아,유나이티드 스테이츠(미국) …」하며 지레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예요,한국인이에요.』 아리영은 좌석 앞 주머니의 세계 지도책을 꺼내 한반도를 가리켰다.
『코리아는 미인의 나라인가 봅니다.』 그제서야 그는 한국과 아리영을 동시에 칭송하며 영어 발음도 아름답다고 덧붙였다.
『영어는 어려워요.첫째,발음에 원칙이 없잖습니까.』 그는 샴페인잔 받침 종이에다 「ghoti」라는 영문 글자를 썼다.
『이걸 영어식으로 어떻게 읽는지 아십니까?』 아리영은 웃었다. 『버나드 쇼에 의하면 「피시」라 읽힌다면서요? 「생선」의 「피시」….』 『알고 계시는군요!』 신사는 푸른 눈을 반짝이며감탄했다.
영어 발음법의 무원칙성을 비판하며 쇼는 「ghoti」라는 해괴한 낱말을 만들었다.
글 이영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