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문창극 칼럼

정부다운 정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7면

지난 대선 때 이명박 후보를 찍었던 사람들은 지금 당황하고 있을 것이다. 현대건설에서 신화를 만들어냈던 인물이니 대통령을 시키면 나라가 달라질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 있었다. 100일이 지난 지금 나라는 혼란에 빠졌다. 서울은 시위로 넘쳐나고 파업은 줄을 잇는데 대책은 없다. 4·19 때 민주당 정부와 비슷하다. 취임 100일 만에 사실상 정권이 무너진 것이나 다름없다. 이런 상황인데 대통령 얼굴은 볼 수가 없다. 총리가 무슨 잘못을 했는가? 총리는 자원외교만 하라고 발을 묶었던 장본인이 누구인가?

경제가 어렵고, 개혁조치가 늦어지는 것은 다 지엽적인 것들이다. 나라 근본만 제대로 되어 있으면 이런 것은 시기가 늦어질 뿐 언제든 다시 할 수 있다. 문제는 지금 나라 근본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 때 가장 절망했던 것은 나라가 나라답지 못하게 굴러가는 것이었다. 대한민국의 탄생을 멸시하고, 안보의 근간을 흔들고, 나라의 품격을 땅에 떨어뜨리고…. 이에 절망해 나라를 다시 세워야 한다는 각성이 이명박표로 뭉쳤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보다 더 악화됐다. 나라가 나라이기를, 정부가 정부이기를 포기한 듯하다. 시위를 주도한 국민대책회의라는 단체가 정부에 대해 ‘명령을 한다’고 조롱해도 끽소리를 못하는 처지가 됐다. 정부는 방향도 목표도 없이 끌려가고 있다. 지난 정부의 문제가 포퓰리즘이었다면 이 정부의 문제는 그 포퓰리즘에 끌려다니는 기회주의성에 있다.

시위가 잘못됐다는 얘기가 아니다. 시위가 필요하면 시위를 해야 한다. 정부나 권력이 국민의 요구를 무시한다면 당연히 저항해야 한다. 그 저항권은 헌법이 보장하고 있다. 문제는 정부 쪽에 있다. 국민들에게 저항권이 있듯이 정부는 나라의 질서를 유지할 의무가 있다. 만인 대 만인의 투쟁을 피하기 위해 국가가 있고 그 질서에 종속하기로 모두가 약속했다. 질서를 위해 법을 만들었다. 개인의 자유는 법 안에서만 극대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표자를 뽑아 통치권을 자발적으로 양도한 것이다. 개인이 저항권을 가지듯 정부는 질서유지를 위한 권한을 부여받은 것이다. 그러나 이 정부는 그 권한을 방기했다. 40일이 넘도록 거리가 점령당해도 아무 조치를 할 수 없는 식물정부가 되어버렸다. 전경들에게는 무조건 굴종만을 요구하고 있다. 사고가 날까 봐서란다. 시위에 참가한 초등생·중학생들이 전경을 향해 욕을 하고 침을 뱉는다. 그 옆의 어른들은 오히려 박수를 친다. 이 나라의 장래가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이 정부는 민심을 포용하지 못하고 굴종했다. 포용과 굴종은 다르다. 포용이 주체적이고 적극적인 것이라면 굴종은 피동적이고 추종적인 것이다. 쇠고기만 하더라도 진작에 추가협상을 하겠다고만 했어도 이 지경까지 오지 않았다. ‘문제가 없다’에서 ‘30개월 이상은 안 들여온다’ 그러다가 ‘추가협상을 하겠다’로 물러났다. 늘 뒷북만 쳤다. 이제 와서 추가협상한다고 과연 효과가 있을까? 공기업도 개혁하겠다고 큰소리치다가 물러섰다. 다중의 힘에 밀려 이제는 “유류값을 보조하겠다. 휴대전화료 깎아주겠다”고 아첨까지 한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왜 진작 못했는가? 굴종은 정부의 권위만 떨어뜨린다. 누구도 이제는 정부의 힘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기회주의적 처신은 모두에게 버림받는다. 이 정부는 시위자들에게서는 비난을 받고, 원칙을 못 지킴으로써 그 반대쪽으로부터도 신뢰를 잃어버렸다. 이제는 고립무원이 되어버렸다. 100일을 뺀 남은 5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이번 시위를 두고 직접민주주의의 가능성이 열렸다, 생활정치 시대가 찾아왔다, 인터넷이 위력을 떨쳤다는 등 다양한 평가가 나오고 있다.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역사가 말해주는 한 가지 진리가 있다. 번영은 질서 속에서 나온다. 불안정, 혼돈 속에서는 모든 것이 유동적이다. 아무것도 뿌리를 내릴 수 없다. 뿌리가 없는 것은 곧 시들고 만다. 무정부 아나키 시대에 무슨 번영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처방은 하나다. 정부가 정부다워야 한다. 정당한 권력의 권위를 회복하라는 것이다. 질서와 원칙을 지키라는 것이다. 권력이 민중을 억압하려 할 때 민중이 저항하듯, 민중이 정부를 흔들려고 할 때 정부는 나라를 지켜야 한다. 민주적 절차로 뽑힌 정당한 정부이기 때문이다. 이는 국민이 위임한 신성한 권리다. 이런 원칙을 지키려면 용기가 있어야 한다. 대통령이 적당히 무마용 개각이나 하고 뒤로 숨으려 해서는 안 된다. 시위대 앞에 나서서 설득해 보라. 법치를 위해 돌에 맞을 각오를 해보라. 질서를 수호하다 쓰러지는 대통령이 되어보라. 그때 흩어졌던 민심이 다시 돌아올 것이다.

문창극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