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한밤중에 걸려온 전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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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지방에서 친구가 올라왔다.우리 동네도 외지의 차량이 주차할 곳은 마땅치 않다.이리저리 헤매다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남아있는 공간이 없어 어느 집 담 아래에 주차했다.오랜만에 만난친구와 이야기 꽃을 피우느라 시간 가는줄 모르고 있는데 자정쯤전화 벨이 울렸다.
『밤 늦게 죄송합니다.
저희 땅은 아니지만 담 앞에 주차된 차를 조금만 앞으로 이동시켜 주시면 한 대 더 주차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좀 나와주시면 고맙겠어요.』 애띠고 고운 목소리의 주인공은 그 담 안집에 세들어 살고 있는 만삭의 새댁이었다.
『저희 집 신랑이 새벽 일찍 나가야 하거든요.』 큰 길 입구에는 그녀의 남편이 소형 트럭을 주차하려고 기다리고 있다 미안하다는 듯 연신 고개를 숙였다.
서울에도 이런 인심이 있느냐며 친구는 감탄을 연발했고 나 또한 훈훈한 감동을 받았다.모두가 바쁜 삶을 살면서도 이렇게 조금씩만 남을 배려한다면 참으로 아름다운 세상이 될 것같다.
늦게 귀가하고 일찍 출근하는 그 집 차의 주차사정을 잘 알고있는 그 집 이웃들은 그 자리에 주차를 안하지만 가끔 우리 같은 사람이 있는 모양이다.그럴 때마다 밤 늦게 미안해하면서 예의를 갖춰 전화를 한다는 그 집 새댁이 참으로 보기 좋았다.
다음 날 낮에 본 그 집 담 아래에는 그 흔한 「주차금지」푯말 하나 없이 사려깊은 새댁의 마음처럼 깨끗하게 비어있었다.아름다운 마음씨를 가지고 있는 그 새댁과 그 집에 항상 좋은 일만 있기를 간절히 기원했다.
〈서울관악구신림13동 〉 이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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