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자금카드 흘리는 盧씨-폭탄선언 여부.노림수에 큰 관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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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노태우(盧泰愚)피고인이 18일 서울지법 417호 법정에서 열린 첫 공판에서 대선자금지원을 시사한 것은 김영삼(金泳三)정권을 향한 고단수의 「위협용 카드」로 분석된다.
盧씨는 이날 검찰신문에서 『비자금의 사용처와 관련,92년 대선때 사용한 돈은 없느냐』는 문영호(文永晧)부장검사의 질문에 『그것을 밝히면 나라전체가 혼란스러워진다.국정을 맡았던 사람으로서 밝힐 수 없다』고 진술했다.
이는 盧씨가 지난달 16일 수감직전 검찰청사앞에서 했던 말보다 훨씬 진척된 내용이다.당시 盧씨는 『여러분의 가슴에 담고있는 불신과 갈등을 모두 내가 안고 가겠다』고 말했다.함구(緘口)하겠다는 뜻이다.또 대선자금에 대한 직접적인 언 급도 아니었다. 그러나 이날 盧씨의 첫 공판 진술은 비자금이 정치권에 흘러들어갔음을 시사하는 동시에 金대통령정권을 향해 경고및 위협을가한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앞으로 재판과정에서 盧씨가 「폭탄선언」을 할지 안할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盧씨가 앞으로 막다른 궁지에 몰렸다고 판단할 때는 「히든카드」로 써먹을 수도 있다고 봐야할 것같다.
盧씨는 이날 공판에서 「비자금장부」를 없애버린 사실도 밝혔다. 그러나 그의 머리속에는 그 내용이 또렷이 남아있을 가능성이높다. 그는 공판에서 『대국민성명에서 밝힌 비자금 총액 5,000억원은 확실한 근거없이 머리속에서 추측한 금액이며 장부를 폐기하기전 정확한 액수를 확인해 보다 구체적으로 액수를 알 수있었다』고 진술했다.이 「정확한 액수의 확인」은 곧 「그의 기억력속에 비밀장부가 옮겨갔다」는 이야기다.따라서 盧씨가 대기업총수로부터 받은 돈의 내용은 모두 두뇌에 입력돼 있을 것이다.
설령 盧씨 기억력에 한계가 있다 하더라도 그가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부본(副本)을 만들어 숨겨두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렇다면 盧씨 입장에서는 金대통령정권을 향해 최후공격을 가할 수 있는 「히든카드」를 아직도 쥐고있는 셈이다.
『히든카드를 쓸 것인가 말것인가』『쓴다면 그 적기(適期)는 언제인가』.
1차공판을 마친 뒤 서울구치소로 돌아간 노태우피고인은 수의(囚衣)속에 얼굴을 묻고 끊임없이 「폭탄」사용의 유혹을 느낄 것같다. 그래서 앞으로의 재판과정은 그의 폭탄선언여부와 그 내용이 가장 큰 관심사로 떠오를 전망이다.
김영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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