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확씨 행적 再조명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80년 초 국무총리를 맡아 12.12와 5.17등 격동하는 한국현대사의 산증인이라 할 신현확(申鉉碻.75)씨의 당시 행적이 검찰조사를 통해 재조명되고 있다.
전두환(全斗煥)전대통령의 5.18내란혐의를 수사중인 검찰은 16일 申씨를 참고인으로 소환,申씨의 입을 통해 80년 「서울의 봄」당시 全씨의 정권찬탈 과정을 파헤치고 있다.
그는 최규하(崔圭夏)전대통령이 12.12때 정승화(鄭昇和) 당시 계엄사령관의 연행을 사후재가하는 현장에 있었고 신군부가 80년 5월17일 무장병력을 배치한 가운데 비상계엄 전국확대를국무회의에서 통과시킬 때 회의를 주재해 신군부의 협력자라는 눈총을 받기도 했다.
검찰은 그러나 조사를 통해 申씨가 신군부의 협박을 최대한 극복해가며 비교적 법과 여론의 편에서 총리직을 수행했다는 판단을한 것으로 알려졌다.申씨는 88년 국회청문회때도 자신의 80년초반 행적에 대해 일부 진술을 하기는 했으나 『 변명만 하고 있다』는 의원들의 서슬퍼런 질타에 구체적 해명 기회를 갖지는 못했다. 申씨는 80년초 『신군부의 앞잡이』『2원집정부제 개헌을 통해 총리직을 연장하려 한다』는 등 학생과 야당으로부터 쏟아지는 의혹과 비난의 한가운데에 있던 인물.당시 시위현장에서 申씨는 「신현악(惡)」이라는 악명으로 곧잘 불려지곤 했으 며 全씨와 함께 「처단자 명단」에 단골로 등장해 무수히 「화형(火刑)」당했다.그러나 申씨는 거의 모든 각료와 공조직이 신군부의호령에 「풀잎처럼 누워」있을때 이들의 전횡과 폭압에 제동을 건인물로 뒤늦게 밝혀지고 있다.
申씨는 全씨의 집권의도가 마각을 드러내기 시작할 무렵인 지난80년3월 중반,총리집무실에서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겸 합동수사본부장의 느닷없는 방문을 받는다.全씨는 공석으로 있는 중앙정보부장을 자신이 겸직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으나 申 씨는 『중정부장은 대통령의 직속기관이기 때문에 총리 권한밖의 일이지만 내게묻기에 답한다면 「반대한다」』고 분명히 말했다는 것이다.
이 자리에서 申씨는 비상기구설치와 국회해산 요구를 즉각 묵살했고 계엄확대건도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라며 이들을 돌려보낸 것으로 밝혀졌다.물론 이같은 신군부의 요구는 崔전대통령의 재가로 모두 관철됐으나 적어도 申씨가 법치주의를 지키려고 했음은 평가할 만하다.
이와 관련,申씨는 국회청문회에서 전력을 들춰가며 공세를 펼치는 의원들의 질문에 『당시 생명을 건 일도 한두번 있었다.결코비겁하게 굴지는 않았다고 하느님께 맹세할 수 있다』고 답변했으나 당시는 공감을 얻지못했었다.
신동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