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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편히 죽을 권리를” 병원 “살인방조 벌 받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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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10일 오후 4시 서부지법 305호 민사법정. ‘안락사’에 대한 첫 공판이 열렸다. 신촌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던 중 식물인간 상태에 빠진 김모(75·여)씨의 자녀 4명이 병원을 상대로 ‘무의미한 연명행위 중지 가처분 신청’을 냈었다. 존엄하게 사망할 권리를 위해 인공호흡기를 떼 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제21민사부(김건수 부장판사) 주재로 열린 심리는 빠르게 진행됐다. 김씨 자녀 측 소송 대리인인 신현호(법무법인 해울) 변호사와 병원 측 대리인인 신동선(법무법인 다솜) 변호사가 참석했다. 김씨의 가족은 참석하지 않았다.

김씨는 올 2월 기관지 내시경을 받던 중 폐혈관이 터져 의식이 없는 상태로 현재 뇌사 판정을 기다리고 있다. 가족 측은 가처분 신청을 통해 ▶일절 연명 치료 금지 ▶심장이 멎을 경우 응급 심폐소생술 금지 등을 요구했다.

◇존엄사 vs 형사처벌=가족 측 신 변호사는 심리에서 “환자가 회복 불가능한 상태에 있지만 인공호흡기를 떼자마자 죽는 게 아니라 자발 호흡이 가능한 상태”라고 밝혔다. 그는 “가처분 신청은 환자 측이 치료 결정권을 갖고 집에서 자연스럽게 죽음에 이르게 해 달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병원 측 신 변호사는 “‘보라매 사건’ 때처럼 의료진이 가족들의 요구로 인공호흡기를 뗐다가 ‘살인 방조’로 형사처벌을 받은 전례가 있기 때문에 가족들의 요청을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반박했다. 병원 측이 자발적으로 환자의 호흡기를 뗄 경우 감당해야 할 짐이 크다는 것이다. 그는 또 “만약 환자의 인공호흡기를 뗐을 경우 사망과 같은 돌이킬 수 없는 피해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가족 측 신 변호사는 “‘보라매 사건’은 환자가 살 가능성이 있음에도 인공호흡기를 뗀 것이다. 현재 뇌의 3분의 2 이상이 손상돼 회복 가능성이 없는 김씨의 경우는 다르다”고 일축했다. 그는 “김씨는 원래 죽어 가는 과정에 있으므로 돌이킬 수 없는 피해란 없다. 무의미한 치료로 인해 죽음만 연장될 뿐”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판사님이 직접 병원에 와 환자의 상태를 살펴보고 담당 의사와 면담해 달라”며 재판부에 요청하기도 했다.

◇환자의 상태가 중요=법원이나 검찰의 형사처벌은 환자가 소생 가능한 상태인지 여부에 달려 있다. 1997년 ‘보라매 사건’의 경우 가족들의 요구로 의료진이 뇌 수술을 받고 의식불명인 환자에게서 인공호흡기를 떼 냈다. 이에 환자의 가족과 담당 의사는 ‘살인 방조’ 혐의로 처벌됐다. 법원이 환자가 소생할 수 있는 상태였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06년 6월 간경화 말기 환자에게서 인공호흡기를 뗀 의사 2명에 대해 검찰은 무혐의 처리했다. 환자가 소생 불가능한 상태였다는 이유다. 김씨의 다음 공판은 17일 오후 4시 같은 법정에서 열릴 예정이다.

한은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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