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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에 3 - 0 ‘30년 한풀이’ 판바스턴 감독 “친구야 미안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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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그라운드에서 축구전쟁이 벌어지던 시간, 관중석에서는 축구축제가 열렸다. 네덜란드-이탈리아전이 열린 10일(한국시간) 스위스 베른의 스타드 드 스위스 관중석에서 양국 응원단이 한껏 치장하고 응원전을 펼치고 있다. [베른=외신종합]

마르코 판 바스턴(44·작은사진·右) 네덜란드 축구대표팀 감독과 로베르토 도나도니(45·左) 이탈리아 감독은 1987~93년 이탈리아 AC 밀란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스타 플레이어 출신이다. 공격형 미드필더 도나도니의 킬패스에 이어지는 스트라이커 판 바스턴의 마무리. 당시 AC 밀란의 주요 공격 루트였다. 두 사람이 뛰던 시절 AC 밀란은 이탈리아리그를 세 차례 제패했고,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정상에도 두 차례 올랐다. 둘의 우정은 지금까지 이어져, 요즘도 자주 만나 골프를 즐기곤 한다.

그런 두 사람이 10일(한국시간) 스위스 베른의 스타드 드 스위스에서 마주 섰다. 2008 유럽축구선수권(유로 2008) 조별리그 C조 첫 경기에서다. ‘오렌지 군단’의 사령관 판 바스턴과 ‘아주리 군단’의 지휘관 도나도니. 냉엄한 승부 앞에서 우정은 사치스러운 감정이었다. 판 바스턴은 친구를 제물 삼아 3-0의 짜릿한 승리를 챙겼다. 이탈리아·프랑스·루마니아가 속한 ‘죽음의 조’에서 네덜란드는 8강으로 가는 유리한 길목을 점령했다.

네덜란드에서는 전반 26분 뤼트 판 니스텔로이가 선제 포문을 열었고, 베슬리 스네이더르(전반 31분)가 추가골을, 히오바니 판 브롱크호르스트(후반 31분)가 쐐기골을 각각 터뜨렸다. 대회 직전 수비의 핵인 파비오 칸나바로가 부상으로 빠진 이탈리아의 카테나치오(빗장수비)는 네덜란드의 파상공격 앞에서 힘없이 풀렸다.

판 바스턴에게 유럽선수권은 각별하다. 그는 20년 전인 88년 이 대회에서 5골로 득점왕에 오르며 네덜란드를 우승으로 이끌었다. 그는 잉글랜드전에서 해트트릭을 작성했고, 서독(현 독일)과의 준결승전 및 소련(현 러시아)과의 결승전에서 골을 터뜨렸다. 네덜란드가 월드컵이나 유럽선수권 등 메이저대회 정상에 선 것은 그때가 유일하다. 그뿐이 아니다. 네덜란드가 이탈리아를 꺾은 것도 30년 만이다.

네덜란드는 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 8강전에서 2-1로 이긴 이후 9경기 만에 승리를 맛봤다.

스타드 드 스위스를 가득 메운 오렌지색 응원단은 경기가 끝나고도 승리의 감격으로 환호성을 멈추지 않았지만, 판 바스턴 감독은 “월드 챔피언(2006 독일 월드컵 우승팀)을 이겨 기쁘다. 하지만 이제 첫 경기를 치렀을 뿐”이라며 두 번째 경기인 프랑스전에 대한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한편 같은 조의 프랑스는 루마니아와 0-0으로 비겼다. 프랑스로서는 실망스러운 결과지만, 루마니아에는 8강 진출의 희망을 이어갈 수 있는 계기가 됐다.

글=이해준 기자, 그래픽=차준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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