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서 귀순 북한 최세웅씨 일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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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북한 대성총국 유럽 지사장으로 12일 귀순한 최세웅씨 일가족은 전형적인 평양의 상류층 가정이다.
우선 올해 34세인 崔씨는 지난 80년 중반 무역일꾼으로 발탁돼 대성총국에 몸담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북한 노동당 39호실 직속인 대성총국은 북한 최대의 대외 무역상사로 오스트리아.
마카오.홍콩.싱가포르에 각각 지사를 설치하고 있다 .
퉁퉁한 얼굴에 안경을 쓴 崔씨가 대성총국에 들어간 배경에는 그의 아버지 최희벽의 후광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최희벽은 일찍이 노동당 재정경리부장을 역임한 경제통으로 대외경제쪽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崔씨의 부인인 미모의 신영희(34)씨도 특이한 경력을 갖고있다.바로 그가 지난 85년 남북예술단 교환공연때 무용대표로 서울을 방문한 바 있다.서울을 직접 눈으로 본 신씨가 다른 북한주민들과 달리 남한에 대해 남다른 감정을 갖고있 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한 관측통은 신씨의 이같은 배경을 놓고 그가 한때 북한 최고의 예술단인 「피바다 예술단」 일원이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하고 있다.신씨도 남편 崔씨와 마찬가지로 외국어에는 상당한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崔씨는 슬하에 창혁(8)군과 송희(5)양등 두 자녀를 두었는데 자녀들에 대한 인적사항은 안기부도 정확히 언급하지 않고있다.崔씨는 평양외국어학원을 거쳐 김일성종합대학 독문과를 졸업한 보기드문 수재로 알려졌다.
崔씨가 유럽으로 발령난 것은 지난 88년초.대성총국 고위층에서 그의 출신 성분과 유창한 영어 실력을 높이 평가했기 때문이다.崔씨는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김일성 주체사상에 투철한 무역일꾼이었다.그도 그럴것이 북한 일반주민들에게 선망의 대상인 해외상사원으로 파견된 것은 물론 남들은 꿈도 못꾸는 「가족동반 해외근무」라는 특전까지 받았기 때문이다.
崔씨가 지난 7년간 맡아온 분야는 국제금융분야.그는 평소 자신의 관심분야인 이 일에 최선을 다했다.또 崔씨는 이 과정에서북한의 대외 무역현황,특히 유럽과의 외환거래에 정통해졌다.그 결과 崔씨에게는 「북한 최고의 국제금융전문가」라 는 별명이 줄곧 따라붙었다.연간 무역고가 21억달러인 북한은 현재 런던.스위스.오스트리아를 통해 상당액의 외환 거래를 하고있다.
崔씨는 그러나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점차 공화국에 회의감이 들었다.특히 신문등 외국 언론매체를 통해 북한의 실상을 알고부터 회의감은 깊어만 갔다.평양에서 바라보는 북조선은 주체사상으로 똘똘뭉친 「세상에 부러움이 없는」나라였다.그러 나 외국에서비쳐지는 조국은 1인독재와 굶주림에 시달리는 후진국에 불과했다. 그러던 차에 평양에서 소환명령이 떨어졌다.임기를 채웠으니 이제 그만 들어오라는 명령이었다.소환장을 받아쥔 崔씨는 이 문제를 부인과 의논했다.며칠낮 며칠밤을 고민한 이들 부부가 마침내 내린 결정은 「서울행」이었다.
최원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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