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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 레저] 호방한 '형제의 나라' 몽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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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깃털처럼 가볍게, 빛처럼 빠르게… 몽골 기병들은 저 호수를 건너, 저 들을 질러 서쪽으로 서쪽으로 내달렸다. 세계제국 건설의 꿈을 안고. 광활한 몽골의 대지에는 아직도 그 기상이 서려 있다.

▶ 유목민 보르씨의 자가용은 현대 엘란트라다.

인천을 떠나 울란바토르로 가는 몽골항공 비행기 안. '20분 뒤면 도착한다'는 안내 방송에 창덮개를 열었다. 비행기 아래로 보이는 것은 드넓은 광야를 덮은 흰 눈, 볕이 잘 드는 곳에 눈이 녹으며 실핏줄처럼 드러난 갈색의 흙. 몽골의 봄은 한반도보다 늦다고 했지.

기내석 팔걸이에 재떨이가 붙어 있는 낡은 항공기는 촌스럽기보다는 친숙하게 느껴진다.1992년 한국의 한진그룹이 무상으로 기증한 보잉727이 몽골에서 처음으로 소유하게 된 제트 여객기라 했던가.

부양오하 국제공항에서 만난 현지 여행사 가이드 바트사이한(24). 몽골에서 며칠간 동행하기로 한 그는 한국어가 매우 유창하다. "몽골국립대학 한국어과를 졸업했다"고 한다. "그렇다 해도 어찌 그리 발음이 자연스럽냐" 고 물어보니 "몽골인은 언어 능력이 뛰어나다"고 답한다. 함께 여행을 하게 될 이 친구는 몽골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몽골 내에서 최고의 교육을 받은, 몽골의 엘리트다.

몽골과 한국은 외모만으로는 몽골인인지 한국인인지 분별할 수 없는 '형제의 나라'다. 이곳 자동차 10대 중 7, 8대는 한국에서 수입한 중고차일 정도로 한국의 각종 공산품이 인기를 얻고 있다.

4륜 구동차에 몸을 싣고 울란바토르 서남쪽으로 300㎞를 달려 엘슨타사라 지역으로 간다. 홉스굴 호수만큼 크고 유명하진 않지만, 작은 호수들이 초원과 어우러진 아름다운 곳이다.

특히 몽골제국의 옛 수도 하르호름에서 자동차로 한시간 거리밖에 안된다는 점도 외국인 여행자의 발길을 끄는 이유다. 울란바토르에서 엘슨타사라까지 왕복 2차로 300㎞를 달리는 데 걸린 시간은 6시간. 포장도로라 하지만 시멘트나 아스팔트가 벗겨져 흙이 드러난 구덩이가 여기저기 눈에 띌 만큼 도로 사정이 좋지 않다. 그래, 여기는 몽골이다.

엘슨타사라에는 봄기운이 제법 느껴진다. 포장도로를 벗어나 한참 동안 초원을 달려 닿게 되는 '호더노르'. 호수라지만 늪에 가깝다. 그만큼 수심이 얕다. 호수 주변에는 겨우내 얼었던 물이 녹아 개울을 만들며 초원을 적시고 있다.

이달 중순이면 호수 주변에 풀이 돋기 시작하고, 5월 중순에는 하얀 에델바이스가 필 것이라고 한다. 호수 주변은 인적이 뜸하다. 한반도 7.4배 크기의 땅에 265만명이 사는 몽골. 수십㎞를 달려도 인가를 볼 수 없는 곳이 몽골이다.

광활한 초원 위에 외로이 한채 서있는 '겔'이 눈에 들어왔다. 유목민의 전통적 주거 양식인 겔은 나무로 원형(圓形)의 틀을 잡고 그 위에 가죽과 천을 두른 이동식 천막이다. 염소를 땅에 눕혀 놓고 빗으로 털을 긁으며 캐시미어의 원료를 모으고 있던 유목민은 이방인의 청에 흔쾌히 천막 문을 열어주었다. 천막 안에 있던 아내는 다급히 차(茶)를 데워 내놓는다. 전깃불이 없는 탓에 천막 안은 매우 어둡다.

"남기지 말고 한번에 다 드세요. 그게 여기 예의입니다." 가이드 바트사이한이 귀띔해 준다. 물 귀한 몽골의 초원에서 유목민에게 얻어먹는 차 한잔. 한 방울이라도 남길 수야 있는가.

'가축을 얼마나 키우냐' 호기심 많은 이방인의 질문에 남편 보르(30)는 "염소 100마리, 양 200마리, 낙타 한 마리, 소 20마리, 말 10마리"라고 대답한다. 끝자리가 '0'으로 똑 떨어지는 숫자의 나열. '낯선 이에게 정확한 숫자를 말해 무엇하랴'고 생각했을까.

겔 옆의 축사에는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새끼양 20여마리가 뒤뚱거리고 있다. 다른 유목민의 것과 구별하기 위해 푸른색과 붉은색 실을 새끼양의 귀에 묶어 놓았다. 하지만 푸른색은 몽골인들이 가장 좋아하고 즐겨 쓰는 색깔이라 한다. 인적이 드무니 다른 사람의 것과 섞이기도 힘들지만 혹여 섞인다 한들 구별하기도 어렵다. 그가 가축의 숫자를 정확히 모를 것이라는 추측이 강해진다.

그의 재산 중 빠뜨릴 수 없는 것은 낡디 낡은 한국차 '엘란트라'. '가끔씩 이용한다'고 하지만 그가 한달에 몇번이나 차를 모는지는 짐작할 길이 없다. 어쨌든 그는 나보다 부자임에 틀림없다. 많은 가축을 거느리고 있으며, 낯선 외지인을 집으로 들여 차를 대접할 만큼 마음이 넓으니.

수많은 별이 초원의 허공을 뒤덮은 이날 밤. 외국인 여행자용 휴양소의 겔 안에서 바트사이한은 난로에 나무를 집어 넣으며 말했다.

"몽골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유목민이에요. 유목민이 없다면 누가 초원뿐인 몽골을 보러 오겠어요. 유목민이 곧 몽골입니다. 저도 나중에는 초원으로 돌아가 유목민 생활을 할 거예요."

형제의 나라, 몽골에서 나는 이날 마음이 넉넉한 이들을 만났다.

엘슨타사라(몽골)=글.사진 성시윤 기자

*** 여행 쪽지

인천~몽골 항공편은 몽골항공이 주 3회(월.수.금요일), 대한항공이 주 2회(화.토요일) 운항하고 있다. 3시간 소요. 도시간 고속버스 등 여행 인프라가 열악한 편이어서 개별적으로 여행하기보다는 여행사의 단체 상품을 이용하는 게 아직은 편하다.

중앙트래블서비스(www.jtsnet.co.kr.02-754-3400)에서 4박5일 일정의 몽골 역사.문화 체험 상품을 내놓고 있다. 4월 26일, 5월 3, 10일 출발한다. 참가비는 119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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