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 간 잇단 정책 혼선 “경제 부총리 부활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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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세훈 행정안전부 장관과 정운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왼쪽부터)이 4일 기획재정부에서 열린 경제정책조정회의에 참석해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의 모두 발언을 듣고 있다. 경제정책조정회의는 40일 만에 열렸다. [연합뉴스]

4일 오전 정부 과천청사 기획재정부 7층 회의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경제 현안을 논의하는 경제정책조정회의가 열렸다. 미국산 쇠고기 사태와 유가 상승에 따른 물가 급등과 같은 큰 현안 때문에 관심이 쏠렸다.

당초 참석 대상은 장관 20명. 하지만 장관이 참석한 부처는 농림수산식품부·보건복지가족부 등 다섯 곳에 불과했다. 이 회의가 40일 만에 열렸음에도 나머지 부처는 차관급이 대신 나왔다. 지식경제부·금융위원회·공정거래위원회 같은 핵심 경제부처에서도 차관급이 나왔다.

경제정책조정회의는 경제정책을 조율하는 비중 있는 자리다. 종종 청와대의 수석비서관도 참여한다. 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인 3월 7일 회의에는 청와대 김중수 경제수석과 곽승준 국정기획수석이 참석할 정도로 열기가 뜨거웠다. 그래서 대통령과 총리만 빠진 ‘미니 국무회의’로 불렸다. 하지만 이날은 ‘차관회의’로 바뀌었다.

회의를 주재한 강 장관은 곧바로 회의를 진행했다. 알맹이가 없어서인지 회의가 끝난 뒤 논의 결과도 공개하지 않았다. 경제부처의 한 고위 관료는 “과거에 기획재정부 장관이 경제부총리를 겸임할 때와는 비교가 안 된다”며 “지금은 경제 정책에 혼선이 있는데도 나서서 교통정리할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에는 경제 부총리가 없다. 7년 만에 경제 부총리를 폐지한 명분은 정책을 조율할 게 많지 않아 실효성이 없다는 것이었다. 여기에는 청와대가 경제정책을 직접 챙기겠다는 속내가 깔려 있었다. 하지만 이건 처음부터 과욕이었다. 청와대 몇몇 비서진이 그 많은 경제정책을 조정하고, 챙기기에는 우리 경제가 워낙 크고 복잡해졌기 때문이다.

경제정책을 총괄하고 조정하는 ‘큰형님’이 없다 보니 부처는 제각각 딴 목소리를 내며 혼선만 커지고 있다. 재정부가 영리의료법인의 필요성을 강조하면 보건복지부가 “안 된다”고 묵살했다. 강만수 장관이 추경 편성을 추진하자 여당인 한나라당에선 “공약과 국가 재정법 위반”이라며 한마디로 잘랐다. 환율·금리·에너지 대책을 둘러싸고도 잡음이 계속됐다. 국민은 누구 말을 믿어야 할지 헷갈리고 당혹스럽다.

미국산 쇠고기 파동은 총괄 조정 기능이 없어 생긴 최악의 사례다. 정부 관계자는 “과거엔 이런 중요한 국제협상 때마다 경제 부총리 주도로 부처 간 협의와 조정을 통해 방향을 맞췄다. 지금은 농식품부 혼자서 챙기다 사고가 터진 것”이라고 진단했다.

연세대 김정식 교수는 “종전에는 부처 간 견제와 부총리의 조정 덕에 균형을 잡아갔으나 지금은 이런 시스템이 붕괴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만큼 경제 부총리를 부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김대중 정부가 출범하면서 경제 부총리를 없앤 적이 있었다. 당시 공룡 부처로 원성을 샀던 재정경제원의 힘을 빼고, 경제수석과 경제 부총리의 해묵은 갈등을 없앤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부작용이 속출했다. 그나마 이규성·강봉균·이헌재씨 같은 중량급 경제관료가 재경부 장관을 맡아 연륜으로 컨트롤 타워 역할을 했지만, 아무래도 어려움이 있었다. 결국 3년 만인 2001년 진념 재경부 장관이 취임하면서 경제 부총리가 부활됐다. 경제 부총리가 필요하다는 것은 이미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충분히 입증된 결론인 셈이다.

서울대 경제학부 강광하 교수는 “타이틀이 대수냐라는 사람도 있지만 현실적으로 같은 직급으로는 관계 장관을 모아 현안에 대처하기 힘들다”며 “경제부처를 총괄하는 경제 부총리를 부활해 정책 조정 기능을 살리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김종윤·조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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