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소설>미로찾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0면

채영은 이 순간을 위해 오랫동안 준비한 듯 산 속에서 민우가해야할 일이며 가방속의 물건들을 설명했다.
『아시겠죠.나침반.밧줄.마른 음식.특수 무기들이에요.어쩌면 저 산에 들어가 의외로 오랜 시간을 보내야 할지도 몰라요.그리고 꼭 명심하세요.그를 죽이려면 머리를 쏴야 해요.다른 곳을 쏴서는 아무 소용이 없어요.』 『그건 또 왜 그렇소.』 『나중에 자연히 아시게 될 거예요.그는 당신을 순수한 제물로 삼으려고 마음을 먹었으니 당장 큰 위험이 닥치지는 않을 거예요.일단저 산에는 당신 혼자 올라가세요.아마 그의 측근들이 아지트 주변에 흩어져 있을 텐데 저와 당신이 함께 가면 그는 금방 내가죽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 차릴 거예요.그러면 우리에게 이길 승산은 극히 적어요.』 『꼭 이렇게 해야만 하오?』 민우가 갑자기 피로감을 느끼며 물었다.이런 긴장감에 싸인 다는 것은 극히피로한 일이다.채영이 가만히 한숨을 쉬었다.
『그냥 편히 그를 사랑만 한다면 이렇게 하지 않아도 되겠죠.
저는 그저 묵묵히 그가 하는 짓을 옆에서 보고 그의 은총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면 될테니까요.노벨문학상이나 열심히 추구하면서…그러나 당신과 사랑을 하려면 이렇게 하지 않으면 불가능해요.
그리고 저도 이제는 그에게 질렸어요.사랑은 따뜻해지려고 하는데그렇게 차가운 심장을 가진 사람을 사랑하고 싶진 않아요.어서 서두르세요.우리에게 기회는 많지 않아요.당신은 그에게 닿게 되면 모진 마음으로 그의 머리를 향해 방아쇠만 당기시면 돼요.그후의 일은 제가 알아서 할게요.』 『나는 한번도 사람을 죽여본적이 없소.내가 그 일을 해내리라고 믿지는 말아요.』 민우가 미적거렸다.채영이 당차게 되물었다.
『의사를 하면서 한번도 사람을 죽이지 않았어요?』 『하긴…인턴때 여섯 명이 내 손 아래서 목숨을 잃었죠.숨이 끊어져 갈 때 심폐소생술(cardiopulmonary resuscitation)을 하는 것은 인턴의 몫이었으니까….』 『그렇다면 저보다 나아요.저는 지상운의 곁에서 사람들이 파멸하고 죽어나가는 것은 많이 봐왔지만 한번도 제 손으로 사람을 죽인 적은 없어요.빨리 서두르세요.우리에게 시간은 별로 없어요.』 민우는 채영의 채근에 못이겨 플로팅 옷을 입고 가방을 들었다.가방도 역시플로팅 가스가 장치된 듯 무척 가벼웠다.채영이 가리킨 산줄기에접어들었을 때는 이미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다른 사람들은산에서 내려오고 있었지만 민우는 무작정 산속으로 깊숙이 들어갔다.
글 김정일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