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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자로가는길>경남 양산 극락암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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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극락암(極樂庵)을 눈앞에 두고 잠시 쉬어가는 목에서는 허연 뱀의 허물조차 징그럽기 커녕 진리의 말씀으로 다가온다.「어째서사람들은 허물을 벗어버리지 못하고 그것에 묶여 사는 것일까.새몸을 받아 거듭 태어날 수도 있을 텐데」하는 생 각이 절로 간절해지기 때문이다.극락암은 현대불교사에 있어 고승 중 한분이었던 경봉(鏡峰)선사가 머물렀던 곳이다.스님의 선필(禪筆)을 보노라면 눈이 씻겨지는 느낌이다.그의 송도활성(松濤活聲)이란 작품이 일본왕 쇼와(昭和)를 깜짝 놀라 게 해 엄청난 거금에 낙찰된 것은 서예계에 잘 알려진 일화다.생전의 스님은 찾아오는 손님에게 꼭 이런 질문을 하였다고 시자였던 명정(明正)스님이 전해준다.
『극락에는 길이 없는데 어떻게 왔는가.』그러면 어떤 사람은 택시를 타고 왔다고도 하고,어떤 사람은 걸어서 왔지요 하고 대답했다는 것이다.그리고 스님의 법문을 듣기 위해 찾아온 프랑스작가 로베로 팽제는 『안내받아 왔습니다』라고 대답했 는데,통역하는 사람이 잘못해 『허공에서 내려왔습니다』하고 말해 웃음바다가 된 적도 있었다고 한다.
우스갯소리처럼 들려 덩달아 웃는다.그러나 다음 순간 웃고만 있는 자신이 쑥쓰럽다.필자에게 질문하면 무어라 대답했을까 하고솔직히 망설여지는 것이다.극락암까지는 걸어서 왔지만 극락에는 아직 가보지 못했기 때문이다.극락암이어서 그런지 여느 암자보다찾는 사람들이 많다.마치 어디가 극락이냐고 꼬부랑 할머니도,데이트를 즐기는 어린 연인들도 술래처럼 기웃거리며 경내를 다니고있음이다.그렇지만 극락암밖에 무엇이 더 보이겠는가.암자 뒤편에는 송도활성이란 속뜻처럼 솔바람 이 파도처럼 우우우 소리치고 있고,극락선원(極樂禪院)에는 스님들이 무섭게 정진중이고,어떤 스님은 볕이 드는 마루에서 바둑을 두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도 잡초 풀숲이 울타리같은 어수룩한 곳이 수상쩍어 보인다.삼소굴(三笑窟)이란 편액이 걸린 경봉 스님의 생전 처소가 눈길을 사로잡는 것이다.이름하여 「세 번 웃을 수밖에 없는 굴」이란 뜻의 삼소굴.필자가 경봉 스님의 물음에 이 런 대답을 하였다면 무어라 이르셨을까.『스님,세번 웃다 보면 극락에 다다릅니다.』 산문을 지나 이정표를 보고 포장된 길을 따라 승용차로는 10여분,도보로는 30분 정도 걸린다.이정표만 믿지 말고자꾸 물어서 가는 게 고생을 더는 길이다(극락암 원주실 (0523)82-7083).
정찬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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