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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장을 숲으로 … 일본의 환경정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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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일본 최북단의 홋카이도(北海道)에서는 늦봄까지 스키를 즐길 수 있다. 연간 적설량이 6m에 이를 정도로 눈이 많이 내리기 때문이다. 평소 눈 구경을 못하는 중국 남부 지역과 홍콩·대만 관광객들에겐 겨울철 관광지로 홋카이도가 최고로 꼽힌다. 양질의 온천과 골프장도 관광객을 끄는 요인이다. 기자는 올 4월 홋카이도 중서부 후라노(富良野) 지역의 한 골프장을 찾았다. 다음 달 홋카이도 도야코(洞爺湖)에서 환경을 주제로 열리는 G8(선진 7개국+러시아) 정상회담의 준비 상황을 견학하는 자리였다. 이곳에선 고객이 줄어들어 폐장된 골프장을 숲으로 환원하는 작업이 3년째 진행 중이다. 골프장 건설 전의 천연림을 되찾으려면 100년도 넘게 걸린다고 한다. 대규모 인력을 투입하면 하루 이틀 만에 18홀 전체를 묘목으로 채울 수도 있겠지만 천연적인 방법으로 복구하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걸린다.

천연림 조성의 출발은 묘목 만들기에서 시작된다. 일반적으로 나무는 암수 한 몸인 은행나무를 제외하면 암나무와 수나무가 따로 있어서 나비나 벌이 꽃가루를 옮기거나 바람에 날려 수정이 된다. 열매가 열리고 씨앗이 생기면 땅에 떨어져 어린 나무가 자라게 된다. 나무들이 군락을 이루며 자생하는 것도 이런 과정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묘목을 가꾸는 데만 여러 해가 걸린다. 묘목을 옮겨 심는 일은 이 골프장을 찾는 자연학습 견학자들의 몫이다. 고사리 같은 작은 묘목을 허허벌판에 한 그루씩 옮겨 심다 보면 숲을 가꾸기까지는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저절로 깨닫게 된다.

숲 환원 작업을 떠맡고 있는 ‘후라노 자연숙(塾)’은 아직 묘목을 심지 않은 한 홀에서 지구의 역사와 환경 위기의 절박감을 보여주고 있다. 이 홀은 지구의 역사가 46억 년에 이른다는 점에 착안해 460m를 걷는 코스를 마련해 놓았다. 성큼 한 걸음 걸어보니 약 1m였다. 시간으로 환산하면 1000년이다. 10m를 걸으면 1억 년이 흐른 셈이다. 이런 식으로 한참을 걸었지만 지구 환경은 큰 변화가 없었다. 빙하기와 해빙기를 거듭하고 공룡의 멸종이 있었을 뿐이다. 그 사이 지구는 나무로 뒤덮이고 산소가 발생하게 되면서 우주에서 유일하게 인간이 숨 쉴 수 있는 푸른 별이 됐다. 그러나 460m 지점에 도달하자 상황이 급변했다. 인간이 본격적으로 사용한 지 100년도 안 되는 TV·컴퓨터·냉장고·자동차 등의 잔해가 쌓여 있었다. 460m 가운데 불과 0.1m에 불과한 ‘찰나의 순간’에 지구가 인간의 손에 파괴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다음 달 7~9일 열리는 홋카이도 G8회담에 참석하면 이 골프장이 웅변하고 있는 일본의 지구 살리기 대책을 실감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일본의 이런 노력은 단순히 지구 살리기 차원을 넘어 1석5조의 국가 전략을 지향하고 있다는 점을 놓쳐서는 안 된다. 첫째는 물론 지구온난화 방지다. 둘째는 환경을 둘러싸고 재편되고 있는 세계 질서의 이니셔티브 확보다. 미국은 올해부터 2012년까지 적용되는 교토의정서는 외면했지만, 2013년 개시되는 ‘포스트 교토의정서’에는 마지못해 참여할 예정이다. 세계의 공장인 중국은 물론 한국도 규제 대상국 포함이 확실시되고 있다. 일본은 환경을 통해 국제사회의 주도권을 쥐고 산업에서는 관련 기술의 표준화까지 노리고 있다. 셋째는 환경 산업을 일본의 차세대 먹거리로 키우는 것이다. 넷째는 일본의 이미지를 바꾸는 것이다. 공해를 유발하는 제조업 강국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환경을 내세움으로써 깨끗하고 안심할 수 있는 클린 이미지를 구축, 국가의 수준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게 된다. 마지막 목표는 관광객 유치다. 2010년 1000만 명에 이어 2020년 2000만 명 목표를 세웠다. G8회담을 홋카이도에서 여는 것도 관광자원 홍보의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환경과 관련해 어떤 국가 전략을 갖고 있는지 궁금하다.

김동호 도쿄특파원

바로잡습니다

은행나무는 암수 한 몸이 아니라 암나무와 수나무가 따로 있기에 바로잡습니다. 또 지구의 나이 46억 년을 걷기 코스의 길이인 460m로 나누면 1m는 1000년이 아니라 1000만 년에 해당하며, 100년은 0.1m가 아니고 10만 분의 1m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