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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 스크린 깜짝 외출 ‘섹스 앤 더 시티’ “패션을 더 사랑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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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영화 ‘섹스 앤 더 시티’의 네 주인공. 샬럿·캐리·미란다·사만다(왼쪽부터)의 캐릭터는 TV 시리즈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나이가 더 들었을 뿐 TV의 인기코드를 그대로 가져왔다.

영화 ‘섹스 앤 더 시티’는 동명의 TV시리즈 팬을 위해 잠시 파티를 연 것 같다. TV시리즈가 등장한 건 꼭 10년 전. 뉴욕 맨해튼을 무대로 네 싱글 여성의 연애와 일상을 화끈하게 그려낸 이후 6년간 전 세계적 인기를 누렸다. 요즘도 케이블TV에서 틀어대고 있지만, 새 시즌이 이어질 전망은 별로 없다.

영화에는 낯선 관객까지 유인해야 한다는 강박도, TV시리즈의 뛰어난 에피소드를 능가하는 드라마도 드러나지 않는다.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 안부를 확인하고, 함께 보냈던 시절의 감정을 잠시 다시 맛보고, 부담 없이 헤어지는 파티에 가는 마음으로 보는 편이 적당하다.

◇캐리, 웨딩드레스 입다=영화는 캐리(세라 제시카 파커)에 초점을 맞췄다. 내레이션의 주인공이자 영화제목과 같은 칼럼을 연재중인 작가다. 이야기의 시작은 앞서 TV시리즈가 끝난 지점과 연결된다.

캐리는 만나고 헤어지기를 반복해온 평생의 연인 빅(크리스 노스)과 시리즈 마지막회에서 감격의 재회를 한 터. 두 사람은 이제 함께 살 집을 보러 다니고, 내친김에 결혼식까지 올리기로 한다.

다 아는 대로, 결혼이라는 제도는 이제껏 캐리에게 금단의 영역이었다. 만인의 축복 속에 착착 진행되는 결혼준비는 불길한 반전을 예감하게 한다. 결말은 짐작대로 캐리와 빅의 해피엔딩이건만, 그에 앞서 캐리는 다시 한번 좌절을 맛봐야 한다.

이 영화의 또 다른 주연은 화려한 패션이다. 본래 캐리는 매니어급 패션 애호가. 그가 숭배하다시피 사들이는 마놀로 블라닉의 구두는 이 영화에서도 주요 모티브로 등장한다. 의상담당 패트리샤 필드의 감각이 남다르다는 것도 주지의 사실이지만, 영화 전반부에 등장하는 네 여자의 의상은 잠시 눈이 불편할 만큼 과하다. TV시리즈가 일상이었다면 이 영화는 이벤트다. 과장된 패션은 초반 네 여자의 지나친 호들갑과 함께 불안한 예감을 부추긴다.

◇영화야? 패션화보야?=압권은 웨딩드레스다. 캐리는 당초 중고 옷가게에서 산 소박한 빈티지 의상을 웨딩드레스로 입으려다, 패션잡지 보그의 제안으로 웨딩화보를 찍게 된다. 영화는 이름난 디자이너의 실명을 차례로 호명하며 화려한 드레스를 다섯 벌쯤 보여준다. 그중 캐리의 대사를 빌려 최고라고 꼽는 것은 비비언 웨스트우드의 드레스. 화보를 본 디자이너 웨스트우드가 선물로 보내준다는 설정을 통해, 캐리는 이 드레스를 결혼식에 입기로 한다.

과장된 호화로움과 그에 따른 불안감이 극에 달하는 순간, 즉 당일에 결혼식이 취소되고 캐리는 비탄에 빠진다. 이런 캐리의 곁에서 세 친구 역시 전부터 이어진 갈등을 반복 체험한다. 앞서 아기를 낳고 브루클린으로 이사했던 변호사 미란다(신시아 닉슨)는 직장과 육아에 지쳐 섹스조차 귀찮아지는 위기를 겪고, 연인에게 배신당하는 결정타를 맞는다.

◇청소년 관람불가 속사정=모처럼 속궁합·겉궁합이 고루 좋은 연하남을 만나 안정된 관계에 접어들었던 홍보전문가 사만다(킴 캐트럴)는 배우인 남자친구의 일 때문에 뉴욕을 떠나 LA에 사는 것이 지루하다. 사만다는 섹스와 사랑을 분리해 즐기는 최전선에 서있던 인물인데, 지금은 남자친구 때문에 분방한 생활을 억제해야 하는 것이 고민이다. 사만다의 기질은 역시나 코미디와 가장 잘 통한다. 남자친구를 위한 선물로 자신의 맨몸에 초밥만 얹고 누워 나체초밥을 연출하는 것도, 옆집의 매력남을 훔쳐보다 이 영화에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의 남성 신체부위를 등장시키는 것도, 모두 사만다의 몫이다.

주변이 이러니, 샬럿(크리스틴 데이비스)은 혼자만 너무 행복한 데 불안을 느낀다. 다른 세 명과 달리 낭만적 사랑과 완벽한 가정에 대한 갈망이 컸던 새침데기 샬럿은 행복한 두 번째 결혼과 입양한 큰딸에 더해 그토록 원하던 임신에도 성공한다.

유일한 새 얼굴이 캐리가 비서로 채용하는 20대 여성 루이스(제니퍼 허드슨)다. 사랑을 꿈꾸며 세인트루이스에서 뉴욕으로 상경해, 살 돈이 없어 대여점에서 빌렸을망정 루이뷔통의 명품 가방을 애지중지하는 아가씨다. 지금은 저마다 자수성가했지만 뉴욕 입성 당시에는 꿈밖에 없었을 네 여자의 20년쯤 전을 떠올리게 하는 캐릭터다. 5일 개봉.

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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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미덕을 꼽자면 시청자와 함께 보낸 세월을 존중하는 점이다. TV시리즈 등장 당시 극중 네 여자의 나이는 30대 초반. 이후 10년이 지난 지금, 영화는 배우들의 나이 먹은 얼굴도, 극중에서 흐른 시간도 감추지 않는다. 영화에는 넷 중에 가장 손위인 사만다가 50번째 생일을 맞는 장면이 과감하게 등장한다. 한 남자에 충실한 사만다의 현재는 과거와 달라진 듯싶지만, 정말 그럴까. TV시리즈에서 연인에게 결별을 고하며 외쳤던 명대사, “당신을 사랑해. 하지만 나는 나를 더 사랑해”가 영화에도 나온다. 사만다가 상징하는 이 영화의 태도는, 분위기 사뭇 다른 남의 영화 제목을 빌려 표현하자면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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