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도 1만5000m ‘하늘의 오피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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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비즈니스 자가용 제트기 ‘사이테이션X’의 비행 모습. 겉모양은 날렵하고 내부(작은 사진)는 아늑한 회의실 같다.

아늑한 회의실을 통째로 옮겨놓은 듯했다. 2일 오전 11시 김포공항 국제선 이착륙장. 이곳에 대기 중이던 날렵한 생김새의 8인승 비즈니스 자가용 제트기(비즈젯) ‘사이테이션X’에 들어서자 든 느낌이다. 네 명이 서로 마주 보게 설계된 좌석은 좌우로 90도 회전이 가능해 금세 작은 회의실로 변했다. 기내가 작고, 일반 여객기에 비해 소음이 적어 목소리를 높이지 않아도 상대방의 말이 잘 들렸다.

공항에 들어선 뒤 비행기 이륙 때까지 걸린 시간은 약 20분. 공항 1층에 마련된 귀빈실에 잠시 있을 때를 빼고는 활주로에 대기 중인 비행기에 오르기까지 지체하는 시간이 거의 없었다. 공항을 이륙한 비행기는 최고 시속 973㎞, 고도 1만5545㎞로 대구 상공까지 왕복했다. 속도를 높이자 소음이 더해졌지만, 흔들림은 거의 없었다. 빗방울이 떨어지는 날씨였음에도 약간의 진동만으로 활주로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국내 비즈젯 시장이 본격적으로 열린다. 로하스개발은 13일까지 사이테이션X 시승회를 열고 내년 6월 공식 운항한다고 밝혔다. 국내 일부 대기업이 회사 출장용으로 자가용 제트기를 소유하고 있지만, 비즈젯 사업만을 위해 법인을 만든 건 로하스개발이 처음이다.

이 회사 임각순 대표는 “전 세계적으로 비즈젯 사업이 연 30% 성장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에서도 이 사업을 시작하는 기업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워런 버핏이 대주주인 미국 넷젯을 모델로 삼겠다”고 말했다. 넷젯은 1986년 설립돼 700여 대의 자가용 비행기를 갖고 있다.

◇공동 소유로 비용 절감=김희찬 로하스개발 상무는 “비행기 한 대를 19명이 공동 소유하는 방식으로 운영한다”고 전했다. 계약은 5년 단위로 하고 1인당 25억원의 입회비를 내야 한다.

그는 “이 돈은 5년 뒤 전액 되돌려받을 수 있으며, 회원은 한 시간당 250만원을 내고 연간 70시간 비행기 이용권리를 갖는다”고 말했다. 입회비는 보증금이다. “220억원짜리 비행기를 연간 약 2억원을 내고 소유하는 셈”이라는 설명이다. 사이테이션X의 최대 운항거리는 5689㎞. 중국·일본은 물론 태국·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 지역까지 한 번에 이동할 수 있다. 비행기 정비와 운행은 TAG항공사 아시아지사가 맡는다.

◇스케줄 조정 마음대로=일반항공제조업체연합에 따르면 전 세계 비즈젯은 2006년 886대에서 지난해 1138대로 28.4% 늘었다. 올해는 1300대를 돌파할 전망이다. 비즈젯의 인기는 2001년 9·11테러 직후 크게 높아졌다. 안전성을 중시하는 이용객이 많아진 때문이다. 분초를 다투는 기업인들에게서 효율성을 인정받았다.

김 상무는 “이용 시간을 업무 스케줄에 맞출 수 있고 비행기 안에서도 업무 관련 회의를 진행할 수 있다”고 말했다. 비즈젯의 활성화는 침체된 지방 국제공항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엄용범 한국공항공사 홍보실장은 “공항이용료나 이용객이 쓰는 부대 비용 말고도 지방공항이 국제적 명성을 얻게 될 기회”라고 말했다.  

김포=문병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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