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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경제전쟁과 비자금 파동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임진왜란때 밀려오는 왜군을 맞아 힘겨운 싸움을 하던 이순신(李舜臣)장군을 감옥에 넣었다가 당쟁을 일삼던 나라의 지도자들이나 국민들 모두 큰 피해를 보았다.지금은 경제 전쟁시대고 경제전쟁에서 싸울 장수는 기업경영인이다.세계적인 대기 업들과 힘겨운 싸움을 하는 우리 경제 장수들이 줄줄이 검찰에 소환된 바 있고,언제 또 법정에 줄줄이 서고,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될지 몰라 전전긍긍하고 있다.우리의 30대 그룹 임직원과 직계가족을모두 합치면 600여만명이 되고 1차 협력회사까지 합치면 1,000만여명이나 되는데,이들도 모두 현재 심한 불안속에 싸여 있다. 어느 금융인은 경제전쟁시대에선 정치가 경제를 위해 존재해야 하는데,지금은 나라의 지도자들이 정치를 위해 경제를 희생시킬 것 같아 몹시 불안하다고 했다.어느 정치학자는 경제 전쟁시대에선 경제장수들이 많아야 하고 국가의 유능한 인재들 은 기업경영 쪽으로 가야 하는데,반대로 정치 쪽으로 많이 가니 안타깝다는 말도 했다.또 어떤 경제학자는 우리나라 정치산업의 수익성이 너무나 좋아 인재들이 정치로 쏠리는 것이 문제이므로 정치개혁의 초점은 정치 산업의 수익성을 낮추는 것이라고도 한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오랜 기간 고도성장을 하고 있는 나라다.스위스 제일의 유니언은행(UBS)은 21세기 국가 경쟁력 세계 제일의 나라는 단연코 한국이 될 것이라고 점쳤다.무수한 인재들이 세계적인 경륜을 쌓아가고 있는 한국은 사실 보통 나라가아니다.세계 여러나라가 한국모델을 배우려 하고 한국기업을 유치하고 한국식 경영을 연구하려 하는데,우리만이 우리기업의 문제점을 너무나 크게 부각시키는 것 같다.물론 문제가 없다는 말은 전혀 아니다.
『메가 트렌드』의 저자인 존 네스비트는 「경제 전쟁은 분초를다투는 전쟁」이라고 했다.한시바삐 비자금 문제를 해결해 기업경영인들이 새로운 마음으로 열심히 뛰게 해야 한다.사실 기업의 경쟁력이란 것은 삼복 더위의 생선회처럼 언제 상 하게 될지 모른다.경제라는 꽃은 정성을 다해야 겨우 피는 것이다.경제문제는정치논리로 해결될 성질이 결코 아니다.잘못하면 불과 몇년 안에도 경제는 주저앉을 수 있다.
앞으로 갈수록 치열해가는 국제 경쟁은 물론이고 양대선거,노사불안정,중소기업 도산,대외신용도 추락,기업경시 풍조등 경제를 괴롭힐 일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다.앞으로 경기가 연착륙만 할 수 있어도 크게 다행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지 않은 가.
올해부터 미국의 포천誌는 모든 업종을 다 포함시켜 세계 500대 기업을 발표하고 있다.세계 500대 기업 리스트에 들어가는 기업중 일본 것은 149개고,한국 것은 7개에 불과하다.한국의 각 기업그룹 소속회사 모두를 하나의 회사로 쳐도 10개에불과하다.우리의 30대 재벌중 20개는 세계적 대기업 축에도 못 낀다.그런 걸 가지고 국내에선 우리 기업이 너무나 비대하므로 규제해야 된다는 여론이 강하다.일본은 세계 30대 기업 중16개를 갖고 있다.우리의 삼성과 현대 소속 100여개 회사 매출액을 전부 합쳐도 일본 서열 네번째 종합상사 한 개의 매출액도 안된다.인구가 우리의 경기도만한 스위스는 세계 500대 기업에 들어가는 기업이 14개나 있다.우리 기업은 앞으로도 많이 커야 한다.
국가경쟁력연구의 세계적 권위기구인 스위스 IMD의 어느 학자는 어느날 빵을 사러 갔더니 대통령이 자기 앞에 줄을 서 있더라고 했다.스위스 대통령은 6인의 연방위원이 선출하고 임기는 1년인데 권한이 거의 없다.혼자 전철을 타고 출근 도 한다는 것이다.그야 말로 민주국가이므로 나라의 권한은 주인인 국민에게다 돌려주었다는 것이다.어느 외교관은 한국처럼 대통령 권한이 강한 나라는 새까만 후진국 몇 나라 빼면 아마 없을 것이라고 했다.한국은 정부가 은행을 통해 돈줄 을 잡고 있고,대형 건설공사는 정부가 기업체에 할당하다시피 했다.그리고 공무원의 봉급도 크게 낮다.각종 규제도 수없이 많다.
이런 상황에선 대통령이 작정만 하면 비자금을 얼마든지 조성할수 있다.IMD는 한국의 문제는 정부 행정력의 강한 집중력이라고 지적했다.이런 면에서 우리의 국가경쟁력은 꼴찌에서 두번째다.이러한 정부가 경쟁력이 높은 기업을 규제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앞으로 비자금 문제를 계기로 공무원의 봉급을 잘 인상하고,금융기관을 민영화해 정부가 기업의 돈줄에서 손을 떼고,건설공사 입찰제도를 개선하고,각종 행정규제도 철폐하여 한국이 21세기 선진강국으로 웅비할 수 있는 튼튼한 기틀이 마련됐 으면한다. (서울대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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