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출신 대통령의 시련과 과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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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호 35면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최근 한·미 정상회담 자리에서 이명박 대통령을 성공한 비즈니스맨이라고 불렀다. 그는 “전직 최고경영자(CEO)로서 이 대통령은 무역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다”고 했다. 그 순간 부시는 2003년 광우병 파동 이후 중단된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재개하기로 한 이 대통령의 결정을 염두에 뒀을 것이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는 이 대통령이 취임 전부터 추진해 온 사안이었다. 하지만 한국 국민의 생각은 달랐다. 그럼에도 그는 이를 무시하고 밀어붙였다. 그 결과 수만 명이 거리로 나와 촛불 시위를 벌이는 사태가 빚어졌다. 이 대통령의 지지도는 곤두박질했다.

이 대통령은 스스로를 ‘CEO형 지도자’라고 주장하며 대통령에 당선됐다. 부시 대통령도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MBA 출신 대통령이 됐다. 부시는 단호하게 미래를 보고 결정하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규정했다. 다른 나라에도 비슷한 예들이 있다. 태국의 탁신 친나왓 총리는 거대 통신회사를 성공적으로 경영해 본 경험을 살려 정부를 운영하려고 했다. 이탈리아 언론재벌인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총리도 비슷한 방식으로 나라를 끌어가려 했다.

그들의 정치적 성공과 실패를 통해 우리는 CEO 이력을 갖춘 대통령이 어떤 존재인지 잘 알게 됐다. 그들은 대체로 국민의 뜻을 묻지 않고 결정하는 바람에 거센 비판을 받았다. 일부는 권력을 이용해 자기 주머니를 불린 혐의를 받기도 하다.
이제 그들은 민주주의 정부 운영과 기업 경영은 분명히 다르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다행히 이 대통령은 임기 초반이다. 국가 운영 스타일을 반성하고 궤도를 수정할 시간적 여유가 있다.

아시아 4위 경제대국인 한국의 기업에는 하향식 경영 스타일이 자리 잡아 왔다. 이는 창업자 가문이 지배하는 재벌구조와 잘 어울린다. 이 대통령은 재벌 가운데 하나인 현대의 계열사에서 CEO로 일했다. 그의 지지자들은 그가 불도저처럼 현대건설을 경영했듯이 한국을 이끌어 경제를 살려주길 바라고 있다. 일리 있기는 하다. 삼성·현대·LG 등 재벌은 한국이 세계 13번째 경제대국으로 성장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국정을 재벌 경영하듯이 한다는 생각은 끔찍하기 이를 데 없는 발상이다. 서울의 크레디리오네증권 애널리스트인 숀 코크레인은 이렇게 말했다. “한국은 민주주의가 완전히 작동하는 나라가 됐다. 국가의 중대 결정은 정치적 토론과 합의 과정을 거쳐야 제대로 실행될 수 있다. 지도자는 대화하고 타협하며 자신의 목표를 추구해야 한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번 쇠고기 파동을 제외하더라도 그는 반대 세력에 대한 설득을 게을리 했다.

한국의 많은 비즈니스 리더는 여전히 이 대통령이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위상을 높일 수 있는 인물이라고 여기고 있다. 허니문 기간이 끝난 지금 이 대통령은 CEO 출신으로서 저지른 잘못이 무엇이었는지를 깨닫고 이를 솔직히 시인해야 한다. 그리고 국민의 마음을 되돌릴 수습책을 내놓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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