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한국 미술품 국내서 싹쓸이… 외국에 팔 작품 없어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0면

홍경택은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서 주목받으면서부터 최근 몇 년 새 이름을 알렸다. 그의 ‘도서관Ⅱ’는 이번 경매에 나온 한국 미술품 중 가장 비싼 값인 6억 3000만원에 팔렸다.

“380만 (홍콩달러), 380만, 더 하실 분 계십니까.”

경매사가 800여 명의 관중을 둘러봤다. 150만 홍콩달러에서 시작한 홍경택의 ‘도서관Ⅱ’(227×181㎝)가 순식간에 400만 달러 가까이 오른 참이었다. 크리스티의 아시아 현대미술 이브닝 세일이 열린 24일 오후 홍콩 컨벤션전시센터. 전광판에는 홍콩달러로 부르는 응찰 가격이 달러화·위안화·유로·엔화·원화 등 10개국 화폐로 실시간 환산돼 올라갔다. ‘도서관Ⅱ’는 결국 수수료를 포함해 456만 홍콩달러(약 6억3000만원)에 낙찰, 24∼25일 이틀간 이곳에서 거래된 한국 현대미술품 중 최고가를 기록했다. 형형색색의 책이 꽉 들어찬 화면 한 가운데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 비둘기 등 종교적 상징을 그려 넣은 그림이다.

고가 대작품 위주로 총 34점의 미술품이 나와 32점이 팔린 이날 이브닝 세일엔 한·일·인도 미술품이 각각 5점씩 나왔다. 나머지는 모두 중국 작품이었다. 다음날 이어진 데이 세일에는 한국 작품들이 50점 쏟아져 나왔다. 총 37명의 55점으로 크리스티가 2005년부터 매년 5월과 11월에 진행해 온 아시아 현대미술 경매 사상 가장 많은 수였다. 이 가운데 52점이 팔려 94%의 낙찰률을 기록했다. 가장 비싼 홍경택의 작품에 이어 김창열의 ‘물방울’(257.5×194㎝)이 420만 홍콩달러(5억8000만원), 강형구의 ‘워홀 연습’(5억원), 김동유의 ‘장미와 폭발’(4억3000만원)과 ‘반 고흐’(3억5000만원)가 뒤를 따랐다. 이밖에 전광영·최소영·김종구·데비한·변웅필·이병호 등의 작품이 추정가의 배 이상 가격으로 팔렸다. 순조로웠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크리스티가 이틀간 팔아 치운 763억3500만원어치의 아시아 현대미술품 중 한국 미술품의 비중은 52억7000만원(7%)에 불과했다. 한국미술품 낙찰총액은 지난해 11월 경매 때보다 홍콩달러 기준 9.5% 감소했다. 55점이라는 작품 수부터 일본(106점)의 절반 수준이다. 배혜경 크리스티 한국사무소장은 “한국 작품은 일본보다 먼저 아시아 현대미술 경매에 포함됐고, 지난해까지만 해도 양국 작품이 비슷하게 40∼50점 정도가 들어갔는데 올해는 일본 작품이 급증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에릭 창 홍콩 크리스티 수석부사장은 “한국 작품을 많이 내놓고 싶어도 한국 내 시장의 붐으로 작품을 구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번 경매를 지켜본 강남대 서진수(경제통상학) 교수는 “한국 미술계도 이제 국내 경기에서 벗어나 아시안 게임에서 경쟁할 만한 기초 체력을 기를 때”라며 “당장의 판매보다는 미술관에서 의미있는 기획전을 여는 등 작가를 제대로 키우는 제도 정비가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최고가 기록도 나와=크리스티는 이번 아시아 현대미술 경매부터 이브닝 세일을 신설했다. 대작 중심으로 나와 신기록이 경신되는 현장이 이브닝 세일이다. 아시아 미술시장의 잣대 역할을 더욱 견고히 하겠다는 의지다. 에릭 창 부사장은 “2005년 도입한 아시아 현대미술 경매는 매년 200% 이상씩 신장해 왔다. 이브닝 세일을 도입한 것도 이같은 시장 잠재력을 눈여겨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브닝 세일의 주인공은 단연 중국 작가들이다. 이번 경매에서도 지난해 11월에 이어 최고 낙찰가 기록이 터졌다. 7536만 홍콩달러(100억8300만원)에 팔린 쩡판즈의 ‘가면 시리즈 6번(1996)’이다. 웨민쥔의 ‘굉굉(轟轟)’도 이 작가의 작품으로는 역대 최고가인 75억원대에 팔렸다.

홍콩=권근영 기자

◇크리스티(Christie’s)=세계적 미술품 경매회사로 지난해 낙찰총액이 미화 63억 달러(6조5800억원)에 달했다. 1766년 회사가 설립된 이래 최고액이자 미술품 경매 사상 최고액수다. 미술·사진·보석·와인 등 1년에 80개 부문 600회 이상의 경매를 진행한다. 전 세계 43개국에 80개 사무소가 있다. 아시아에는 홍콩을 비롯해 타이베이·상하이·베이징·도쿄·콸라룸푸르·자카르타·싱가포르·시드니·서울에 사무소를 두고 있다.

[J-HOT]

▶"푸른 눈의 장인어른, 남대문 시장 풍경에 홀렸다"

▶'한국어 만담' 하는 일본 개그맨 "한국 이래서 좋아요"

▶"값싸고 신기한 물건 많은데 손님은 왜 없죠?"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