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환율정책 일단 접고 20억 달러 내다 팔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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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기름 값 급등이 무섭긴 무서운 모양이다. 27일 외환당국은 20억 달러를 시장에 내다 팔았다. 급등하던 원-달러 환율은 금세 진정세로 돌아섰다. 환율이 더 올라야 한다던 당국의 입장 변화는 급등하는 유가와 이로 인한 물가 부담 외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당국은 이날 세 차례에 걸쳐 과감하게 달러를 풀었다. 지금까지의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 노선과는 맞지 않는 일이다. 강만수 경제팀은 수출 증대를 통한 경상수지 개선이 시급하다는 입장이었다. 환율 상승을 수시로 부추겨 온 것도 그래서다. 그런 노력(?) 덕분에 강 장관은 일단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 취임 직전 948원이던 원-달러 환율은 1050원대까지 올랐다. 그랬던 정부가 이제는 환율을 내리려고 대량의 달러를 푼 것이다.

시장에선 당장 정부의 입장이 바뀐 것 아니냐는 얘기가 돌았다. 고환율 정책 기조가 수정됐다는 관측도 나왔다. 그러나 정작 정부의 답변은 교과서적인 수준이다. 기획재정부는 “시장의 과도한 쏠림 현상은 바람직하지 않다” 고 밝혔다. 최근 줄기차게 오르기만 하는 환율 흐름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재정부의 속내도 좀 달라 보인다. 환율 정책을 재고해야 할 정도로 물가 부담이 커졌다는 것이다. 수출과 성장을 위해 고환율 정책을 고수하려면 물가 상승을 어느 정도 감수해야 하는데, 점점 물가 문제가 무거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큰 변수는 기름 값이다. 재정부 관계자는 “올 3월만 해도 유가가 하반기에 안정될 것으로 예상했기에 문제가 안 됐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27일 두바이유는 배럴당 126.48달러로 정부 출범 전에 비해 37.7% 올랐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우리나라 경제로선 이것만 해도 죽을 맛이다. 그런 판에 환율마저 치솟으니 원화로 치르는 기름 값은 훨씬 더 비싸진다. 같은 기간 원-달러 환율은 9.4% 올랐다.

그러다 보니 물가 상승 책임을 강만수 경제팀이 고스란히 떠안을 판이다.국제 유가 상승이야 어쩔 수 없다지만 고환율 때문에 국내 기름 값이 더 올랐다는 비난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틀 전 당국의 외환시장 개입에는 이 같은 소나기를 피하고 보자는 계산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재정부 관계자는 “(환율을 내린 것은) 통증이 워낙 심해 모르핀 주사를 맞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당국이 환율정책을 ‘끌어 올리기’에서 ‘눌러 내리기’로 완전히 바꾼 것 같지는 않다. 재정부 관계자는 “지난 몇 년간처럼 환율을 낮게 유지하는 방식으로 고유가 충격을 흡수했다가는 몇 년 뒤 심각한 후유증이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모르핀 주사를 계속 맞지는 않겠다는 의미다. 정부의 성장 중시 기조도 달라지지 않았다. 외환시장의 수급도 환율이 큰 폭으로 떨어질 것 같은 형편은 아니다.

시장 관계자들은 정부가 당분간 환율을 달러당 1020~1050원대의 박스권에 가둬 두려 할 것으로 본다. 관건은 역시 유가다. 유가가 오를수록 고환율 정책을 포기하라는 압박도 거세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상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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