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으나 마나’ 정부 위원회 530개 중 절반 이상 없앤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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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물가관리를 위해 만든 물가안정위원회는 2005년 이후 단 한 차례도 회의를 한 적이 없다. 기획재정부·농림수산식품부·지식경제부·보건복지가족부·국토해양부 장관 등 장관급 고위 공직자가 5명이나 참석하는 회의지만 매년 한 차례씩 서면으로 의견을 제출한 것이 전부다. 웬만한 협의는 실무자들이 진행하고 주요 결정사항은 국무회의에서 처리해 장관급 협의체는 유명무실해진 것이다.

교육과학기술부 산하 시도교육분쟁조정위원회는 2000년 3월 구성된 이후 단 한 번도 회의를 열지 않았다. 행정안전부 산하 접경지역정책심의위원회도 2002년 이후 회의 실적이 전무했다. 위원회는 만들었지만 조정에 나서거나 심의할 만한 사안이 없어서다.

그동안 실효성 논란이 끝없이 나왔던 정부 위원회가 절반 이상 줄어든다. 행정안전부는 27일 각 정부 부처에서 운영 중인 530개 자문위원회의 51.5%인 273개를 폐지하는 ‘정부위원회 정비계획’을 확정, 국무회의에 보고했다. 김상인 행안부 조직정책관은 “권한만 있고 책임은 없는 비효율적인 위원회 운영을 개선해 책임행정 체계를 확립하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우선 운영 실적이 저조하거나 장기간 구성되지 않은 63개 위원회를 없애기로 했다. 조사 결과 법령에 의해 위원회를 만들어야 하지만 구성도 안 된 위원회도 10여 개나 됐다. 교과부 산하 중앙교원지위향상심의회는 1991년 5월 특별법 제정에 따라 위원회 설립의 법적 기반이 마련됐지만 이후 17년간 위원회는 구성되지 않았다. 법령에만 존재하는 ‘유령 위원회’였던 셈이다.

설치 목적이 이미 달성됐거나 필요성이 줄어든 49개 위원회와 부처 간 협의체로 대체 가능한 12개 위원회, 기능과 성격이 중복되는 58개 위원회, 단순 자문 기능만 있는 91개 위원회도 폐지 대상에 포함됐다.

계속 유지하기로 한 위원회도 소속과 직급을 조정해 운영을 내실화하기로 했다. e-러닝 산업발전위원회 등 22개 위원회는 총리 소속에서 소관 부처로 소속을 옮기고 자격정책심의회 등 6개 위원회는 위원장과 위원의 직급을 하향 조정할 방침이다.

정부는 위원회 증설을 막기 위한 ‘정부위원회 설치·운영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 6월 중 국회에 제출하기로 했다. 법안에는 위원회 설치 때 사전 협의를 의무화하고 ‘일몰제’를 도입해 존속 기간을 정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김상인 정책관은 “불필요한 위원회를 없애고 절차를 간소화하면 보다 효율적인 정책 추진과 예산 절감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박신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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