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벌어지는 韓日관계-한국 입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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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한-일관계가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이렇게 가다가는 어디까지 갈지 알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다.
『일본이 식민지시대에 한국에 좋은 일도 했다』는 에토 다카미(江藤隆美)총무청장관의 망언에 대해 한국정부가 에토 장관 해임을 요구하고,일본이 이를 거부하면서 『한-일합병조약은 법적으로유효하게 체결됐다』는 무라야먀 도미이치(村山富市 )총리의 망언으로 파이기 시작한 한-일관계의 골이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고있는 것이다.
정부는 진사방한을 희망한 고노 요헤이(河野洋平)일외상의 방한요청을 거부했다.앞으로 수일내 에토 망언에 대해 적절한 조치를일정부가 취하지 않는 한 오사카(大阪)한-일정상회담도 무산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전날 공노명(孔魯明)장관은 야마시타 신타로(山下新太郎)주한일본대사를 초치,에토장관 망언에 대한 일정부의 「현명한 결단」을촉구하면서 이번 사태에 자신의 진퇴까지 걸었다는 후문이다.
孔장관은 일본통이다.누구보다 일본을 잘 알고 있다.그런 孔장관이 일각료 해임을 요구할 때는 만일의 경우에 대비한 각오까지했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지적이다.
결심에 앞서 청와대와 이미 사전교감이 이루어진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孔장관은 이날 청와대의 유종하(柳宗廈)외교안보수석등과수시로 전화를 주고 받았다.
그러나 일 정부는 문제의 에토장관을 해임하지 않고 「엄중주의」하는 선에서 사태를 수습키로 공식결정했다.
일본내의 정치적 이유 탓이 크지만 우선 난처하게 된 쪽은 칼을 빼든 외무부다.
적극 대응하는 방법 외에 달리 길은 없다.우선 생각할 수 있는 것이 한-일정상회담의 취소다.현재로선 가장 강력한 카드다.
한-일양국은 오사카 아태경제협력체(APEC)정상회의에 앞서 현지에서 정상회담을 갖기로 하고 18일로 날짜까지 잡았다.
이미 지난달 뉴욕에서 유엔특별정상회담을 전후해 가질 예정이던김영삼(金泳三)대통령과 무라야마 총리간 정상회담이 무라야마 총리의 망언파문으로 한번 무산된 바 있다.
더구나 일본은 APEC 회의 주최국이다.
주최국 입장에서 예정된 정상회담이 무산된다면 외교적으로 큰 타격이 아닐 수 없다.
정부로서 「에토 해임」이라는 카드를 이미 내보인 이상 이를 취소한다는 것은 생각하기 어렵다.孔장관 개인의 명운이 달린 문제일뿐만 아니라 국가적 자존심이 걸린 문제다.
그러나 자존심이 걸린 건 일본도 마찬가지다.각의결정으로 에토장관에 대한 조치를 엄중주의로 결정한 마당에 한국정부가 반발한다고 하루이틀만에 이를 뒤집기는 어렵다.
『방법은 하나뿐이다.에토장관 스스로 사임하는 것이다.이 길만이 양국이 서로 체면을 세우면서 적당한 선에서 문제를 해결하고,오사카 한-일정상회담을 무산시키지 않는 길이다.』 한 정부 당국자의 충고는 난국에 빠진 한-일관계의 현실을 대변하고 있다.망언의 장본인인 에토장관에게 공을 돌려야 한다는 것이다.
결자해지(結者解之)의 자세로 문제를 수습하라는 고언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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