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盧씨 부정축재 사건-스위스銀 계좌 추적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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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검찰이 노태우(盧泰愚)씨의 스위스은행 자금도피의혹에 대한 진상조사에 본격 착수함에 따라 스위스 당국과 금융계의 협조 여부가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얼마나 가까운 시일 안에 盧씨의 비자금 존재여부와 그 규모,환수여부가 결정될 수 있 을까 하는 궁금증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스위스 실정법상 스위스 당국은 우리 정부의 공식요청에 응하도록 돼 있지만 비밀보장이 철저한 그들의 금융관행을 감안할 때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는데는 난관이 많다는 관측이다.
주(駐)스위스 한국대사관측은 7일 『우리측 주도로 盧씨 비밀계좌를 밝혀내려면 ▶계좌번호▶등록된 예금자명▶예금은행 가운데 최소한 한가지를 알아야 하고 그렇지 못하면 전적으로 스위스 당국에 문제해결을 일임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현재 우리 당국이 파악하고 있는 관련정보는 盧씨에게 이름을 빌려 줬을 가능성이 큰 친.인척등 盧씨 관계자 21명의 명단과,93년 노소영씨 부부 20만달러 미국 밀반입사건때 돈다발을 묶는데 쓰였던 스위스 유니언은행(UBS)의 현금띠 뿐이다.
스위스 사직당국은 지난 81년 3월 제정된 「국제형사사법공조법」에 의거,한국 검찰이 외무부를 통해 수사 협조를 공식요청하면 이에 응해야 한다.협조요청 서류에는 盧씨에 대한 한국 검찰의 수사내용과 盧씨 행위의 스위스국내법 저촉사항을 첨부해야 함은 물론이다.
스위스 정부는 자기나라가 마약자금이나 전직고관 비자금에 대한국제적 「세탁소」로 비춰지는데 대해 적잖게 신경 써 왔고 실제로 이를 막기 위한 입법에 진력해온게 사실이다.
스위스의 연방은행위원회도 92년 5월부터 『7만달러 이상의 신규예금자중 출처나 거래행태가 의심스러운 예금주에 대해 조사할의무가 있다』는 지침을 마련하기도 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스위스 금융계의 철두철미한 비밀보호 습성이법규정들을 무색하게 만들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산업은행 스위스 현지법인 사장을 오래 지낸 이용기(李容起)조사부장은 『스위스 은행가들이 스위스 정부의 비자금 확인요청에 호락호락 응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스위스 형법상 돈세탁 혐의가 있는 예금주를 은행 스스로 조 사토록 하고있지만 비밀보장의 명성에 누가 될까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을 것이 뻔하다는 것이다.
작년 12월 대규모 마약밀매자금이 스위스 금융권에 유입됐다는정보에 따라 스위스 검찰이 주요 은행들에 마약거래 혐의자 60명의 계좌개설 여부를 확인의뢰한 적이 있지만 은행권의 강력한 반발에 부닥쳐 유야무야된 적도 있다.
흔히 지난 8월 스위스법원이 마르코스 필리핀 전대통령의 비밀예금을 동결시키는 판결을 내린 일이 스위스의 전향적 태도변화로해석되기도 한다.그러나 스위스주재 한국대사관측은 이에 대해 『마르코스가 황급히 망명길에 오르면서 챙기지 못한 스위스은행 통장번호등 비밀서류가 필리핀정부에 입수됐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라며 盧씨 사건과는 사안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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