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씨 부정축재 사건-김윤환대표 발언 배경 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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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민자당 김윤환(金潤煥)대표는 당내 민정계를 대표하며 잠재적 차기 주자중 한사람이다.이 金대표가 4일 김영삼(金泳三)대통령측을 향해 의미심장한 발언을 했다.
『3당합당 무렵 통일민주당은 빚이 많았다』는 것이다.金대통령이 야당시절에는 빚에 쪼들렸으나 여당에 들어온뒤 여당 후보로 대선을 「무난히」 치를만큼 재정상태가 달라졌다는 말이다.
정치자금 조달과 관련한 金대통령의 「과거」를 슬쩍 짚은 것이다. 이말은 金대통령이 盧씨로부터 한푼도 받지 않았다는데 대한우회적인 이의 제기라고도 볼수 있다.
金대표는 또 대선당시 盧씨의 심정을 분석하며 金대통령과 盧씨관계를 상기시켰다.『盧전대통령이 YS가(당선)될까 회의할 수는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래도 YS가 되어야 한다」는 얘기를 나도 盧전대통령에게 들었다』고 했다.
盧씨가 탈당 후에도 金대통령을 짝사랑했다는 얘기같지는 않다.
두 사람 관계가 어느정도는 한몸임을 넌지시 암시하는 말이다.
문제는 왜 金대표가 이시점에서 이런 발언을 했을까 하는 점이다. 金대표 발언은 갑자기 나온게 아니다.金대표는 당직자들에게최근 정국 추이에 대해 노골적인 불만을 토로했다.
4일 오전 고위당직자 회의에서 그는 민주계 박종웅(朴鍾雄)의원의 이름을 거명하며 『말조심 시켜라』고 강삼재(姜三載)총장에게 지시했다.金대표진영은 朴의원이 대표위원 교체,개혁세력 위주로의 정계개편설등을 흘린다고 믿고 있다.
따라서 盧씨의 비자금 문제를 처리하는 방식과 그후의 수습문제에 대해 핵심부와 의견이 다르다는 말이 된다.
우선은 이번 사건을 확대해 정계개편으로 몰고가는 방식에 반대하는 점이다.
민주계와 청와대 일각에서는 盧씨 부정축재 문제를 원칙대로 처리하고 차제에 개혁지향적 세력끼리 합쳐 총선을 돌파하자는 의견이 존재한다.구체적 대상세력으로 민주당.정개련등이 지목되고 있다. 기업인으로부터 정치자금 안받기,금융실명제 실시,정치관계법개정등 현 정부의 장점을 부각시키고 인적 구조도 여기에 맞게 고쳐 총선을 맞자는 전략이다.
반면 민정계는 개혁대신 화해를 역설하고 있다.현상태 유지론이다.金대표는 4일 기자간담회에서 총선공천기준을 묻는 질문에 『국민화합』을 들었다.『지역간.세대간.과거와의 화해가 중요하다.
盧씨 측근이 정치권에 들어오는 것은 문제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화합정치가 우리 추진방향』이라고 못박았다.이런 주장들의 배경에는 당연히 양쪽의 이해가 걸려 있다.
현정치체제와 민자당구조를 유지해야만 하는 민정계와 이를 털어버리려는 민주계의 갈등이다.또한 金대표등 5,6공 정치인에 대한 압박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들이 어떤식으로든 정치비자금과 연관이 있고 이를 약점으로 해 수사가 된다면 민정계나 金대표는 앉아서 죽을 수밖에 없다.
金대표는 이러한 위기의식속에서 「민정계만 당할 수 없다」는 점을 내풍긴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金대표의 4일 발언은 金대통령측에 「과거」를 들어가며 「자제」를 공개요청한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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