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씨 부정축재 사건-전경련 침묵속 속앓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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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전경련(전국경제인연합회)이 조용하다.
노태우(盧泰愚)씨 비자금 사건 이후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지난달 27일 盧씨가 대국민 사과성명을 발표했을때만 해도상공회의소나 무역협회등 다른 경제단체들은 공식 논평을 통해 나름대로의 입장을 밝혔으나 정작 「재계의 본산」인 전경련은 별다른 논평을 하지 않았다.
최종현(崔鍾賢)회장과 황정현(黃正顯)상근부회장등 수뇌부는 해외출장중이기도 하다.
崔회장은 대통령을 수행해 10월 중순 출국한 뒤 미국에서 회사(선경그룹)일을 보고 있고 黃부회장은 이스라엘과 민간경제협력위원회 결성을 위해 10월27일~11월2일 예정으로 현지 체류중이다. 전경련은 대기업들이 주축이 돼 결성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민간경제단체.盧씨 비자금과 관련,검찰의 기업 수사가 임박한데다 파문이 장기화되면서 경제 전반이 위축되고 있는 상황이어서 재계를 대표해 무슨 일인가를 할 법도 한데 이상하리만 치 잠잠한 상태다.
이와관련,일부 회원기업들 사이에서는 『개별 업체는 할수 없는말도 전경련 차원에서는 할수 있지 않느냐』며 이 단체의 침묵에은근히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기업들은▶盧씨에게 돈을 준 것은 기업이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었던 것이며▶파문이 길어질수록 투자 위축.해외사업 차질등부작용이 커질 것이라는 점을 강조,「선처와 조기수습」을 희망하고 있는데 전경련이 중간역할을 해줄 것을 기대하 는 분위기다.
그러나 전경련도 난처한 입장이기는 마찬가지다.
결과적으로는 중요한 시기에 회장.부회장이 자리를 비운 셈이 됐지만 2~3개월전부터 예정돼 있던 출장으로 오비이락(烏飛梨落)격이 됐다는게 전경련의 해명이다.
또 이들의 부재(不在)로 실무적으로도 회의 소집.대책 마련.
대정부건의등 일을 추진할 수 없게 돼있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침묵의 이유는 사안 자체가 미묘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즉▶회원기업마다 돈을 준 곳과 안 준곳등 입장이 달라 조율이어려운데다▶전경련 차원에서는 지난 91년 50억원을 선관위에 기탁한 이후 정치자금을 거둬준 적이 없기 때문에 직접 나설 계제도 아니라는 것.
국민감정이 팽배해 있어 자칫 잘못 나섰다가는 기름에 불을 붙인 꼴이 될지 모른다는 우려도 있고,崔회장이 盧씨와 사돈관계로서 선경이 여러가지 의심을 받고 있는 점도 운신의 폭을 좁게하고 있어 이래저래 「속앓이」만 하고 있는 형국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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