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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차별 없는 세상 위해 비구니들 자비로 뭉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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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 한국 불교의 평등정신을 세계에 알리겠다고 말하는 본각 스님. 뒤로 미륵보살이 보인다.

서울 홍은동 그랜드 힐튼 호텔을 품고 있는 백련산 마루에는 금장사라는 아담한 사찰이 있다. 절 마당에 서니 북한산과 인왕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곳 금장사에선 지난 18일부터 백일기도가 열리고 있다. 6월 27일부터 9일간 경기도 김포 중앙승가대학에서 열리는 제8차 세계여성불자대회의 성공을 기원하는 것이다.

금장사 본각(52) 스님(중앙승가대 교수)은 지난 3년간 이 대회를 준비해왔다. 1987년 인도 보드가야에서 처음 열린 여성불자대회는 세계 최대의 불교 여성단체인 샤카디타(석가의 딸들)가 주최하는 행사다. 한국에서 처음 열리는 올 대회에는 45개국 7백여명의 수행자와 학자, 일반인이 참여할 예정이다.

"지구촌은 전쟁의 소용돌이에 빠져 있습니다. 미국 같은 강자의 패권에 많은 이들이 희생되는 현실이 참담할 뿐이죠. 뭔가 제동이 필요합니다. 남성 중심의 전쟁문화를 여성 중심의 평화문화로 돌려야 해요. 샤카디타의 힘을 모으려고 합니다. 전쟁과 불평등의 세계를 자비와 생명의 세계로 바꿔야지요."

대회의 주제는 '여성 불자의 교육과 수행: 현재와 과거'다. 여성 불자의 현주소를 토론하는 학술대회와 각국 불교문화를 교류하는 문화행사가 준비됐다. 예컨대 '여성과 지구촌 시대의 불교''일상생활에서의 불법' 등의 강연과 티베트 가수 나왕캐촉의 독창, 국립국악원의 연주, 쪽물 전시 등이 열린다.

"한국 불교는 우리만의 수행에 만족해 왔습니다. 다소 폐쇄적이었죠. 이번 대회는 변화하는 세계 속에서 불교와 여성의 위상을 알아보는 기회가 될 겁니다."

스님은 특히 차별 없는 세상을 강조했다. 달라이라마의 티베트 불교, 틱낫한의 태국 불교가 비구니 승단을 인정하지 않는 건 단적인 여성차별이라고 지적했다.

"한국 비구니는 수행과 교육에서 차별을 받지 않고 있습니다. 지난 1700년 동안 쌓아온 훌륭한 전통을 외국에 알릴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우리도 풀어야 할 과제가 있어요. 지난해 처음으로 조계종 총무원에 여성부장이 나왔잖아요. 아직도 종헌에 따르면 비구니는 본사 주지에 임명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스님은 자비와 관용을 내세웠다. 대립과 투쟁으론 현대 사회의 난제를 풀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불교가 핍박당했던 조선시대에도 가정.국가의 안녕을 빌며 불교의 맥을 지켜온 여성들의 자비사상을 키워드로 제시했다.

"불자만의 잔치가 아닙니다. 모든 여성이 참여하는 축제의 장이 될 겁니다. 지역.국가의 경계는 의미가 없습니다."

본각 스님은 6남매가 모두 출가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 중 막내인 스님은 91년부터 중앙승가대에서 불교학을 가르쳐왔다.

"싫든 좋든 한국은 역사나 숫자나 위상으로 볼 때 비구니의 종주국에 해당합니다. 외국에 이런 전통을 보여주려고 해요. 명찰인 해인사.불국사, 비구니 도량인 석남사.운문사를 순례하는 일정도 잡아놓았습니다. 외국 손님을 많이 초대한 만큼 우리도 빈틈없이 준비해야겠지요." 금장사 미륵보살이 환히 웃는 스님을 내려다보았다. 02-766-95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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