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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아이] 대지진이 들춰낸 중국의 속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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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중국 쓰촨(四川)성 원촨(汶川) 대지진 현장은 중국 사회의 고질적 한계와 잠재력을 동시에 드러내 보여줬다. 1주일가량 지진 피해와 구호 현장을 뛰어다니면서 그런 양면적인 모습들을 적잖게 발견할 수 있었다.

지진 발생 사흘째인 15일 오전. 청두(成都)에서 서북쪽으로 50여km 떨어진 쥐위안(聚源)현 중학교를 찾았다. 이번 대지진으로 6명의 교사와 300여 명의 학생이 한순간에 참변을 당한 곳이다. 아무리 규모 8.0의 강진이라지만 집중 폭격을 당한 듯 4층짜리 건물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폭삭 주저앉아 있었다. 붕괴되지 않고 남은 건물 한쪽 귀퉁이 4층 교실은 세 방향의 벽체가 무너져 나머지 한쪽 벽면에 걸린 칠판이 창공을 향하고 있었다. 황당했다. 그날 오후 1교시 수업은 끝나지 않았는데 60여 명의 그 반 학생들은 한꺼번에 땅속으로 사라져버렸다.

폐허처럼 어지럽게 널브러져 있는 콘크리트 바닥과 기둥을 보고 다시 한번 경악했다. 족히 100년은 버틴다는 콘크리트 건물이 손으로 떼어내니 쉽게 부서져버렸다. 무너진 기둥 속의 철근은 서너 가닥밖에 들어 있지 않았다. 중국식 부실 건축물을 뜻하는 ‘콩비지 공정(工程)’이었다.

졸지에 자녀를 잃은 학부모들은 분노하고 있다. 부패한 관리들에게 부실공사 책임을 묻겠다고 벼르고 있다. 이번 대지진 와중에 수많은 건물이 무너졌지만 유독 학교 건물이 처참하게 붕괴됐다. 교육당국의 집계에 따르면 약 7000동이 붕괴돼 2000명의 어린 학생이 숨졌다.

중국 정부와 관영 언론들은 “지진은 무정하지만 사람에겐 정이 있다(地震無情 人有情)”며 피해가 컸던 원인을 자연재해로 몰아가고 있다. 그러나 대자연의 비정함만을 탓할 수 있을까. 한 세대 이전에 지진으로 24만 명을 희생시키고도 그동안 제대로 된 지진 경보 시스템조차 갖추지 않은 정부의 무책임도 도마에 올려야 하지 않을까. 부패 사슬로 인한 인재(人災) 때문에 자연재해로 인한 피해가 수백, 수천 배 증폭되는 중국의 고질적 병폐는 강진을 통해 이번에도 여지없이 드러났다.

대재앙의 와중에 중국 사회의 질적 발전 가능성도 엿볼 수 있었다. 18일 오후 청두의 최대 번화가인 쭝푸(總府)로. 타이핑양 백화점 옆 육교 위에서 10여 명의 중·고교생이 노래를 부르며 모금운동을 하고 있었다. 이들은 “지진을 극복하자, 힘내라 중국”을 목청껏 외쳤다. 아이들의 손을 잡고 모금함을 찾은 부모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한국의 금 모으기 운동을 신기해할 정도로 중국에선 이런 모금운동을 보기 힘들다. 대재난을 당한 이웃을 돕겠다며 사회 지도층뿐 아니라 일반 국민까지 기꺼이 지갑을 여는 모습을 보면서 “중국인은 자기밖에 모른다”는 고정관념을 고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뿐이 아니다. 지진의 참상이 전해지면서 중국 각지에서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이 재난 지역으로 달려갔다. 공산당원이나 정부 관료들은 쉽게 동원할 수 있지만 이번에 몰려든 시민들은 대부분 자발적인 자원봉사자였다. 경제성장으로 기초가 건실해진 중국 시민사회의 현주소를 확인할 수 있었다.

지진 초기부터 사상자와 피해 상황을 국내외에 신속하게 공개한 중국 정부의 투명한 일처리도 전례 없이 신선했다. 지진 발생 3년 만에 희생자 수를 늑장 발표했던 32년 전 탕산(唐山)대지진 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변화다. 지진 발생 2시간 만에 여진의 위험을 무릅쓰고 구조 현장으로 달려간 원자바오(溫家寶) 총리의 헌신적인 모습을 보면서 중국식 권위주의의 진화 가능성을 가늠해 보기도 했다.

한계와 희망을 동시에 갖고 있는 중국 사회는 이번 대지진에서 어떤 교훈을 얻을까. 엄청난 목숨을 앗아간 일과성 재앙으로 치부해 버릴까, 아니면 구조적 사각지대들을 찾아내 질적 도약의 소중한 기회로 활용할 수 있을까. <쓰촨성 지진 현장에서>

장세정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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