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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철환의즐거운천자문] 늘 웃고 항상 연구하고 … 10년 한결같은 박경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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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주점에 가면 술이 있고 서점에 가면 책이 있다. 술 마시며 꺼내는 돈이 책 사는 데 쓰는 돈보다 많은 이유는 뭘까. 책이 주는 상상보다 술이 이끌어주는 몽상의 힘이 더 크다고 여기기 때문일 것이다. 술독에 빠져 ‘죽는’ 사람의 숫자가 책장에 빠져 ‘사는’ 사람의 숫자보다 훨씬 많은 이유도 아마 그 부근에서 찾아야 할 듯하다.

서점에 진열돼 있는 책들의 주제는 대체로 둘 중 하나다. 사랑, 혹은 성공. 이루어지기 어렵기 때문에, 멀지만 가야 하는 길이기에 그럴 것이다. 사랑의 핵심이 희생이라면 성공의 핵심은 긍정이다. 사람들은 희생하지 않기 때문에 사랑에 못 이르고, 긍정하지 않기 때문에 성공에 못 이른다.

신생 방송사의 대표로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고민 많으시죠?”다. 그럴 때마다 되묻는다. “고민할 시간이 어디 있어요?” 이어지는 대답. “그럴 시간 있으면 계획하죠.” 계획한 대로 실천하고 실패를 통해 학습하니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방송인 박경림이 책을 낸다기에 미리 대충 훑어보았다. 시종일관 사람 사귀는 이야기다. 붙임성 하나로 부침(浮沈) 많은 연예정글에서 10년을 버텼으니 수완이 대단하다. 미움도 적잖이 받았을 텐데 늘 웃고 늘 지저귄다. 한마디로 한결같다. 처음과 지금이 한결같고 속과 겉이 한결같다. 인기 넘칠 때나, 인기 시들 때나 TV 안의 경림과 TV 밖의 경림이 다르지 않다.

처음에 PD들은 이 ‘돌발소녀’에게 호기심 반, 의심 반이었다. “신기하긴 하지만 오래가진 못할 것 같다.” 이게 중평이었다. 예감은 빗나갔다. 그녀는 지금 DJ의 꽃 ‘별밤지기’다. 별이 밤에 뜨는 건 사람들이 밤에 많이 외롭기 때문이라는 걸 그녀는 체험으로 안다. 듣기에 다소 부담스러웠던 목소리를 오히려 매력 포인트로 바꾼 건 단단한 알맹이와 솔직한 껍질 덕분이다.

박경림의 유일한 히트곡(?)인 ‘착각의 늪’ 가사에는 ‘빠져 빠져’라는 말이 반복적으로 나온다. 슬기로운 자는 빠질(fall in) 때와 빠질(fall out) 때를 구별할 줄 안다. 사랑의 향기에는 푹 빠지고 미움의 냄새에선 쓱 빠져라. 희망의 바다에는 깊이 빠지고 절망의 대열에선 냉큼 빠져라.

그토록 방송에서 말을 오래 했으면서 책까지 내려는 의도가 뭘까. 욕심도 없진 않겠지만 이쯤 해서 한번 새겨두고 싶었기 때문 아닐까. 소중하게 모은 보석(사람)들을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욕구, 그리고 그들을 향한 넘치는 사랑을 스스로에게 다짐하고 싶은 욕망.

거저 얻는 건 없다. 오프라 윈프리를 꿈꾸는 경림의 현재 위치는 아직 오(5)프로 윈프리다. 하지만 걱정은 없다. 사람을 향한 사랑, 미래를 위한 긍정의 힘을 놓치지 않는 한 언젠가 윈프리 고지에 나란히 서게 될 것이다. 두려울 게 무언가. “죽는 날까지 최선을 다하면 죽는 날에는 아마도 최고가 될 것이다.”  

주철환 OBS 경인TV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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