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씨 비자금 파문-파문확산 뒷얘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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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박계동(朴啓東)의원이 19일 대정부질문에서 비자금계좌를 밝혔을 때의 일이다.여권의 한 관계자 입에서 즉각 『이현우(李賢雨)돈이다』는 소리가 튀어나왔다.여권의 일부 핵심은 두달전에 이미 그같은 차명계좌가 있었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 다.
당시 여권의 정보망에는 신한은행 서소문지점에 수백억원대의 거액이 묶여있다는 소문이 입수됐다.이를 접한 여권의 1차적 판단은 「정치자금」이라는 것.
사채업자나 기업인의 돈일 경우 몇년씩 숨겨놓을 이유가 없다고보았기 때문이다.이들은 출처조사나 세금추징등으로 20~30%정도를 손해보더라도 꺼내 유통시켜 손실을 보충하려 했을 것이라는게 여권의 판단이었다.
이러던 차에 그 돈이 이 전경호실장의 돈이라는게 확인됐다.이씨가 88년부터 92년까지 4년8개월간 청와대 경호실장을 지내그와 이런저런 연고를 가지고 있으면서 어렴풋이라도 내용을 아는사람들이 여권내에 일부 있었고 그결과로 확인이 가능했던 것이다. 이때까지 여권은 이씨의 개인돈으로 알았다고 한다.그러나 구체적인 조사는 하지 못했다.그래서 돈의 출처나 움직인 경로를 파악하지는 못했다.한 정통한 소식통은 『이씨 개인이 착복한 돈으로 알고 막연히 「그사람 참 맹랑하다」고 생각했다 』고 털어놓고 있다.
여권의 이 판단은 박의원이 폭로했을 때까지도 그대로 유지됐다고 한다.때문에 박의원이 의혹을 제기하자 그날 이홍구(李洪九)총리가 국회답변을 통해 『확인해 보겠다』고 답변하고,다음날 『수사에 착수하겠다』고 밝혔을 때도 전주(錢主)가 노태우(盧泰愚)전대통령이라는 생각은 안했던 것 같다.노 전대통령측에 확인했을 때도 『우리와는 무관한 돈』이라는 대답을 들었다고 한다.그래서 이씨의 돈임을 밝히고 책임을 묻는 선에서 사태가 수습될 수 있다고 보았을 가능성이 있다.
이런 기류에 결정적 반전이 된 계기가 이씨의 검찰 출두.이씨가 검찰에서 『노 전대통령의 돈』이라고 폭로해버린 것이다.이는여권으로서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진술이었다고 한다.. 여권은 아직도 정확한 이유를 알지 못하겠다고 설명한다.노 전대통령 캠프의 인맥관리에 상당한 문제가 있다는 인식은 가지고 있는 것 같다.그러나 다른 의견도 있다.이러한 진술이 노전대통령의 승낙없이 이루어 졌으리라고는 보이지 않는다는 주장이다.여권은 『이제 상황은 통제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검찰수사결과 드러나는 진실은 모두 밝히고 국민의 동의를 얻을 수 있게 처리하는 방법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고 말한다.
상황은 이처럼 외길 수순에 접어들었다.노 전대통령이 자신의 통치자금의 일부였다고 공개토록했는지,이씨가 십자가를 벗어던졌는지는 노 전대통령과 이씨 둘만이 알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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