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e칼럼

보이지 않는 손, 시장 vs. 보이는 손, 버냉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가토 이즈루 외 1인 지음, 우성주 옮김, 달과 소, 2006년 10월

“이제부터는 여러분도 헬리콥터에서 돈을 뿌릴 수 있습니다”

어느 모형 인물의 광고 전단지 문구이다. 어떤 실존 인물을 본뜬 인형일까? 짐작하시는 대로, 취임 이래 금리 인하 조치만 거듭하고 있는 벤 버냉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다. 금리 인하, 즉 돈값을 내리는 조치는 실질적으로 돈을 시장에 더 풀어놓는 효과를 가진다. 말하자면 헬리콥터에서 현금을 살포하는 격이다. 이 때문에 그는 지금 ‘헬리콥터 벤’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를 풍자하는 액션 피겨이다. 여느 장난감에나 붙어 있게 마련인 경고 문구가 그의 처지를 잘 설명해준다. ‘(이 인형이) 실제로 심각한 경기 침체를 막을 수는 없음.’

버냉키를 조롱하는 뮤직비디오도 전세계 네티즌들에게 인기다(www0.gsb.columbia.edu/everybreath). 2006년 2월 FRB 의장 자리를 놓고 버냉키와 경합했던 글렌 허버드 컬럼비아대 경영대학원장의 제자들이 만든 비디오다. 이들은 스팅의 인기곡 ‘Every Breath You Take'의 노랫말을 바꿔 버냉키를 웃음거리로 만들었다. '당신이 숨을 쉴 때마다, 이자율을 바꿀 때마다, 얼마나 일자리를 못 만들어내는지, 우리가 얼마나 스태그플레이션에 시달리는지도 분명히 지켜보고 있을 거야.’

이 뮤직 비디오가 시간이 지날수록 더 인기를 끄는 데는 이유가 있다. 허버드와 달리 버냉키는 취임 당시 미국 금융시장과 경제를 상대적으로 낙관했다. 전임자 앨런 그린스펀처럼 금리를 약간씩 조절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호황을 연장할 수 있으리라고 봤다. 그런데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이라는 복병을 만났다. 금융 불안과 경기 침체 우려가 현실화되고 있다. 유가와 곡물가 급등으로 인플레이션 우려도 가시화 되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세계는 지금 물가 상승 속의 경기 침체라는 스태그플레이션 상황에 접어들고 있다. 허버드(실은 그의 제자들의) 경고가 맞아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전세계 언론을 가장 많이 타고 있는 인물이 바로 벤 버냉키 의장이다. 동시에 자 가장 많이 조롱받는 인물이기도 하다. 임기 말을 맞아 부시 대통령의 영향력이 쇠퇴하면서 그의 자리를 이어받은 셈이다. 그만큼 버냉키는 미국과 세계 경제의 향배를 결정지을 키를 쥔 인물이다. 물론 현재까지는 이렇다 할 재능을 보여주지는 못하고 있지만.

미국의 중앙은행 총재는 왜 대단할까? 중앙은행의 역할이나 기능이 비교적 제한적인 우리나라에서는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우리의 경우 최근 들어 독립성이 강화되긴 했지만, 한국은행은 한 때 ‘재경부(재무부)의 남대문 출장소’라는 비아냥을 들을 정도로 무력했다. 반면 미국은 정치권이나 재무부가 거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을 만큼 막강하다. 더욱이 미국의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다른 나라의 중앙은행과는 다른 점도 있다. 연방제 국가답게 각 주는 자율적인 중앙은행이 있다. 이들의 연합체가 FRB이고, 그 수장 역시 총재(president)가 아니라 의장(chairman)이다.

FRB의 영향력이 과거 그 어느 때보다 커진 것은 무엇보다도 금융의 세계화(globalization) 때문이다. 세계의 모든 돈은 미국 금융시장과 어떤 방식으로든 관계를 맺고 있다. 이 때문에 미국 금융시장이 출렁거리면 세계는 엄청난 파고를 감수해야 한다. 일부 언론들은 이를 ‘티스푼 효과’라고도 부른다. 티스푼으로 머그잔의 중심부를 한두 번 휘저어 보라. 컵 가장 자리로 큰 동심원이 몰려든다. 벤 버냉키는 그 컵을 들고, 언제든 티스푼을 저을 태세다.

점차 커지고 있는 FRB의 영향력에 더해 세계 경제에 대한 불안감으로, 세계 각국은 버냉키가 이끄는 FRB를 해부하고 예측하려고 애쓰고 있다. 우리나라를 예로 들어보자. 전과 달리 보통 사람들조차도 그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다. 버냉키가 금리 결정을 내리면, 우선 미국 증시가 움직인다. 동시에 달러화 가치가 변한다. 이는 즉각적으로 우리 증시와 환율에 영향을 미친다. 장기적으로 우리 금리에도 영향을 미친다. 최근 들어 미국의 금리 인하와 달러화 가치 하락은 국내 주식 투자자들에게는 호재다. 이는 원화 가치 하락으로 수입 물가가 오르고 해외 송금 부담이 커져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도 희소식이다. 한 마디로 벤 버냉키는 당신의 호주머니 사정에 직접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얘기다.

버냉키의 FRB에 대한 가이드북으로 적당한 것은 없을까? 당장 눈에 띄는 것이 두 권이다. 『세계의 경제 대통령, 버냉키 파워』(가토 이즈루 외 1인 지음, 우성주 옮김, 달과 소, 2006. 10)와 『버냉키노믹스-세계 경제 사령관 버냉키의 전략』(장보형 편저, 유비온, 2007.4). 두 권 가운데 먼저 손이 가는 쪽은 앞 쪽이다. 서양의 시스템이나 역사, 문화에 대해 서양인보다 더 풍부한 사료와 해석을 내놓는 일본인의 특성이 잘 드러난 책이어서다. (이 점은 로마사에 대한 말의 성찬(盛饌) 격인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나 와인에 대한 과찬으로 일관한 아기 타다시의 만화 『신의 물방울』를 보면 실감하게 된다). 더욱이 저자인 가토 이즈루는 일본단자의 수석 이코노미스트로, 버냉키 해설로 아시아에서는 가장 유명한 사람이다. 공저자인 야마히로 츠네오는 세계적인 경제통신사 블롬버그의 워싱턴 지국 소속 기자로 FRB를 담당했다.

이들은 미국인들이라면 당연히 알고 있을 시시콜콜한 FRB 관련 사실들도 모두 모아놓았다. 덕분에 이 책은 버냉키는 물론 FRB의 현재와 역사를 한 눈에 이해하기 쉬운 미덕이 있다. 단점이라면 일본인 특유의 실용적 편집으로, 책이라기보다는 서류라는 느낌이 드는 곳이 부분적으로 있다는 사실이다. 이 점은 가독성을 해치기도 한다. 또 FRB를 다룬 미국 서적에서 볼 수 있는 흥미롭고 심층적인 에피소드가 드물다는 것도 아쉽다. 그러나 당분간 버냉키가 이끌게 될 FRB에 대한 관련 서적으로, 사무실이나 집에 한 권쯤 비치해놓고 두고두고 찾아보기에는 충분하다.

이 책으로도 양이 안 찬다는 분들을 위해서 좀 더 전문적인 책을 추천한다. 『FRB 해부: 벤 버냉키의 결정이 당신의 지갑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한 고찰』(스티브 감하우엔). 버냉키의 FRB에 대한 미국 쪽 해설서로는 가장 흥미로운 책이다. 또 직업상 버냉키의 전략을 전문적으로 분석하고 전망해야 될 사람이라면, 버냉키가 2001년에 쓴 『인플레이션 타겟팅: 국제적 경험으로부터 배우는 교훈』이라는 책을 참조하라. 그가 금융정책 전문가로 유명세를 본격적으로 타는 계기가 됐던 책이다. 이 책들은 모두 아마존을 통해 구입할 수 있다. 참고로 아마존에서 벤 버냉키를 쳤을 때 나오는 ‘벤 버냉키를 사랑해’ 티셔츠와 야구모자(각각 16.99$)는 주문하지 마라. 그런 옷을 입고 모자를 쓰고 거리를 활보할 경우 웃음거리가 될 것이 뻔하다. 앞으로 벤 버냉키의 오명이 점점 더 널리 알려질 것을 감안하면 더욱 더 그렇다.

김방희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