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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통신망 풀고 콘텐트 공유 … 단숨에 세계 1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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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지난달 중순 프랑스 파리 샹젤리제 거리의 프랑스텔레콤 매장에서 직원<左>이 고객에게 IPTV 이용법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이나리 기자]

프랑스 하면 흔히 예술과 패션·와인을 떠올리지만, 정보기술(IT) 산업의 첨단국가라는 사실은 덜 알려져 있다. 차세대 방송·통신 융합 서비스인 인터넷 TV(IPTV) 가입자가 세계에서 가장 많다는 점이다. 프리텔레콤·프랑스텔레콤·네프세게텔 등 메이저 3사를 비롯해 다양한 사업자들이 운영하는 IPTV 서비스에 400여만 명이 가입해 있다.

프랑스 IPTV 업계가 단기간에 이처럼 많은 가입자를 모을 수 있었던 건 업체 간 경쟁 환경을 조성해 서비스 가격을 꾸준히 낮춘 덕분이다. 지난해 프랑스 2위 초고속 인터넷 회사인 네프세게텔은 월 44유로(7만1000원) 하던 3중 결합상품(TPS·초고속 인터넷+IPTV+인터넷 전화)의 가격을 29.9유로로 끌어내렸다. 경쟁업체들도 따라서 값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프랑스텔레콤은 TV를 두 대 연결하면 요금을 더 받지만 프리텔레콤·네프세게텔은 이조차 29.9유로로 통일했다. 프리TV는 모뎀 임대료도 받지 않는다. 프랑스통신위원회(ARCEP)의 가브리엘 고테 상임위원은 “가격 파괴 IPTV 상품이 인기를 끌면서 2년쯤 뒤면 초고속 인터넷 가입자의 50%가 TPS 고객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프랑스 IPTV의 고속 성장 이면에는 정부의 과감한 규제 개혁과 경쟁 활성화 정책이 있었다. 이 나라 IPTV 사업은 허가제가 아니라 신고제다. 또 IPTV를 방송이 아닌 통신으로 간주해 규제가 거의 없다. 다른 유럽연합(EU) 국가의 통신사업자에 대한 진입장벽도 없다. 텔레콤이탈리아의 IPTV 자회사인 알리체가 프랑스에 진출한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프랑스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EU 국가는 IPTV 시장 진입이 자유롭다. 스페인 통신위원회(CMT) 다니엘 올레 기술국장은 “프랑스텔레콤도 스페인에서 IPTV 사업을 하고 있다. 누구든 CMT에 사업자 등록만 하면 된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유럽 국가는 ‘가입자 선로 공동활용 제도 ’를 통신회사들에 의무화했다. 가정까지 도달하는 네트워크를 가진 통신회사는 그렇지 못한 기업이 IPTV 사업을 할 경우 이를 빌려줘야 한다. 누구나 IPTV를 서비스할 수 있도록 EU가 제시한 일종의 서비스 촉진책이다. 각국 1위 통신회사들의 입장도 전향적이다. 프랑스텔레콤의 스테판 프랑스 국장은 “경쟁이 있어야 발전한다. IPTV 시장이 커지면 우리 같은 1위 통신회사는 장기적으로 덕을 본다”고 설명했다. 그렇다고 가입자 선로를 빌려 쓰는 IPTV 사업자들이 투자 없이 기존 통신회사 네트워크에 무임승차하는 건 아니다. ARCEP의 고테 상임위원은 “프리텔레콤은 100메가급 초고속 인터넷망을 빠르게 늘려가고 있다”고 전했다. 이탈리아의 패스트웹도 기업 공개로 비축한 돈의 상당 부분을 망 확충에 써, 1위 사업자 텔레콤이탈리아를 바짝 긴장시키고 있다.

콘텐트 사업자들과의 원활한 협력도 유럽에서 IPTV 비즈니스가 번창하는 비결이다. 인터내셔널데이터의 질 핑거 깁슨 이사는 “유럽의 방송사와 통신사들은 시장을 독점하려는 욕심을 부리지 않는 편”이라며 “오히려 IPTV 같은 뉴미디어를 고객 유지의 도구(통신사업자)나 콘텐트 판매처의 다원화(방송사업자)로 간주해 공동 사업을 벌이는 데 적극적”이라고 설명했다.

스페인 1위 사업자인 텔레포니카는 아예 주요 지상파 방송사 드라마를 정규 방송 1주일 전에 방영할 정도다. 이 회사의 루이스 벨로 푸이그-듀란 국장은 “방송사들은 콘텐트 판매 수익이 는다고 오히려 반기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프랑스에선 위성방송사인 카날플러스, 스페인에서는 케이블방송사인 소헤 카블레, 이탈리아 역시 위성방송사인 스카이가 콘텐트 제공에 핵심 역할을 한다. IPTV 사업자들 또한 지난해부터 우수 콘텐트 업체들과 독점 계약을 맺는 등 자체 콘텐트 확보에 나서고 있다. 자금이 풍부한 프랑스텔레콤은 프랑스 프로축구리그 독점 중계권을 따내는 등 독자 개척한 6개 채널로 지난달 ‘프리미엄 섹션’을 출범시켰다.

정부의 치밀한 경쟁 활성화 정책, 기업들의 과감한 가격 인하로 유럽 IPTV 시장은 전성기를 향해 치닫는 분위기다. 사업자들은 가격 경쟁을 넘어 품질 경쟁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프랑스텔레콤의 프랑스 국장은 “고객들이 IPTV로 프로축구를 보며 열광하는데 갑자기 신호가 끊기면 낭패 아니냐. 망 품질 개선과 모바일 IPTV 연구에 힘쓰고 있다”고 말했다. 패스트웹의 스테파노 파리시 사장은 “우리 목표는 소비자들이 원하는 시간에 무엇이든 시청할 수 있는 기술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특별취재팀=이원호(미국)·이나리(유럽)·김창우(아시아) 기자, 최형규 홍콩특파원, 김동호 도쿄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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