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 후쿠다 만난 지 한 달도 안 됐는데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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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과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총리가 지난달 도쿄에서 만나 새로운 한·일 관계를 만들자고 다짐한 지 한 달도 안 돼 양국 간에 풍랑이 일게 됐다. 일본 정부가 2012년부터 적용되는 중학교 새 학습지도요령 해설서에 ‘다케시마(竹島)는 일본 고유의 영토’라고 명기하기로 방침을 정했기 때문이다. 확정되면 새로운 중학교 사회교과서에는 이런 내용이 실리게 된다.

일본 정부는 올 들어 독도 문제에 대한 억지 공세를 강화하기 시작했다. 일 외무성이 올 2월 독도는 자국 영토라는 주장을 보강하고 확대한 팸플릿을 영어·한글판까지 곁들여 인터넷 홈페이지에 게재했다. 그러나 교과서에 이런 주장을 싣기로 한 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다. 과거 일제 때도 그릇된 ‘황국주의’를 뿌리내린 토대는 교육에서 시작됐기 때문이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 총리 때도 일본 문부과학성이 침략역사를 왜곡한 교과서를 인정해 양국 간에 상당한 마찰이 있었다. 그만큼 교과서 문제는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일 정부는 독도 문제에 대해 학생들에게 잘못된 주장을 주입시켜 장기적으로 전면 공세를 펼칠 발판을 만들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한·일 관계는 이명박 정부 초기부터 삐거덕거리게 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고이즈미 총리 당시 양국 관계가 상당히 악화된 가장 큰 이유는 일본 측이 유발한 과거사와 독도 문제에 있었다. 이 대통령은 한·일 관계에서 과거보다는 미래 지향적인 화합을 강조해 왔지만, 운신의 폭이 상당히 좁아지게 됐다. 많은 국민이 또다시 일본에 뒤통수를 맞았다며 분노할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후쿠다 총리는 아시아 외교를 중시하고 있지만, 지지율이 최악인 상황에서 정치력을 얼마나 발휘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일본 정부의 이번 방침은 고이즈미 총리 시절인 2005년 3월에 세워졌다. 나카야마 나리아키(中山成彬) 당시 문부과학상이 참의원 문교과학위원회에서 “차기 학습지도요령에서는 반드시 다케시마는 일본 땅이라고 명기해야 한다”고 주장해 개정안이 준비돼 왔다. 결국 고이즈미·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 등 보수 우파 총리가 6년여간 집권하면서 마련해 놓은 조치들이 계획대로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이 영토 분쟁을 일으키는 것은 독도뿐만이 아니다. 중국과는 중국해 가스전 문제로, 러시아와는 쿠릴 열도(북방 열도) 문제로 다투고 있다. 일본 정치 전문가들은 “지지 기반이 약해진 자민당 내 강경 보수파들이 독도 문제를 계기로 다시 목소리를 높일 가능성이 커졌다”고 분석했다.

교과서에 2012년부터 독도 영유권을 반영하려면 일본 교과서 회사들은 한일병합 100주년인 2010년께에는 구체적으로 교과서 내용을 결정해야 한다. 일본이 한국에 깊게 반성하고 사과해야 할 때에 독도 문제가 더욱 불거지고, 양국 간 갈등의 골이 더욱 깊어질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일본의 궁극적인 목표는 독도 문제를 국제 분쟁화하려는 데 있다. 한국 정부의 기본 방침은 독도를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한 억지 주장에 휘말리지 말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교과서 문제는 과거와는 다른 차원의 문제이므로 한국 정부가 냉정하되 강경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주장이 많다.

도쿄=김동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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