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제 12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물과 불의 조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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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결승전 3번기 3국>
○·박영훈 9단(1승2패) ●·이세돌 9단(2승1패)

총보(1~263)=이창호 9단이 ‘고요한 호수’라면 이세돌 9단은 ‘폭풍우’쯤 되는 사람이다. 그러나 내면을 들여다보면 이창호의 깊은 속에선 용암 같은 불길이 일렁이고 있고, 그래서 이창호는 그 불과 조화를 이루고자 무한히 애쓴 흔적이 있다. 마찬가지로 이세돌의 내면엔 고요함에 대한 희구가 없을 리 없다. 승부사로서 최고봉에 오르기 위해선 어차피 불과 물의 조화는 피할 수 없는 숙제일 테니까….

2008년도 첫 세계 무대 결승전인 삼성화재배는 이세돌 9단과 박영훈 9단의 싸움이었지만 곰곰 돌이켜보면 이세돌과 이세돌의 싸움이었다고 말할 수도 있다. 국후 이세돌은 “떨렸다”고 수차 고백했는데 이것이 이세돌의 진일보함을 보여준다. 결정적인 대목은 ‘참고도’ 흑1로 물러설 때다. 해설자들이 100% A로 잡으러 갈 것이라고 말했음에도 그는 “떨려서” 물러섰고, 그런 식으로 내면의 불길을 제어하며 마치 이창호의 현신을 보듯 안정적으로 한 집 반을 이겼다. 무서움을 알고 겁내기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세돌의 전성시대를 예고하는 대목이다.박영훈은 선천적인 낙천가의 기질을 지녔는데 그것이 이번 결승전에선 대세 판단의 미스를 초래하는 근원이 되었다. 박영훈에게 낙천성은 분명 장점이지만 이창호의 ‘비관’에 대해서도 한 번쯤 생각해 보는 게 좋지 않을까.

박치문 전문기자

다음 주부터 응씨배 세계대회를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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