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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디스살롱>김태길 서울대 명예교수 부인 이종순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진정 행복한 여자의 삶은 무엇일까.지난 14일 자랑스런 서울대인상을 받은 국내 철학계의 태두(泰斗)김태길(金泰吉.75)서울대 명예교수의 부인 이종순(李鍾順.69)씨를 보면서 다시 한번 곱씹어 보게 되는 물음이다.
서울 토박이인 이씨가 충주 출신의 김교수를 처음 만난건 경기여고를 졸업하고 서울여자사범학교 본과 1학년 때인 1944년 10월께.이씨 모친의 고향이 충주인 게 인연이 돼 중매로 만났는데 말이 중매지 결혼식 때까지 신랑감을 제대로 보지도 못했다. 김교수쪽만 외할아버지 병문안 드리러 충주 병원에 온 이씨를창문 밖으로 스치며 슬쩍 본 것이 전부라고 한다.하지만 이들은양가 어른들의 일방적(?)인 결정으로 만난지 두달만인 그해 12월30일 혼인했다.
『처음 충주에서 시어머님을 모시고 살았어요.학교만 다니다 우리 나이로 19세에 결혼했으니 뭘 알겠어요.워낙 살림 솜씨 맵고 부지런한 분이시다보니 별다른 꾸중을 하지 않으셨는데도 참 어렵기만 했어요.』 한겨울에 물동이로 샘물을 길어오고 매캐한 연기속에 부엌일 하기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그때의 경험이 살아가면서 인생의 큰 고비때마다 큰 힘이 됐다고 그는 회고한다. 김교수와 살아온 50여년을 묻자 『선생님(남편을 이렇게부른다)은 책임감이 너무 강하고 원리원칙대로예요.지금까지 잠자는 시간,소식하는 식사습관을 어겨본 적이 없을 정도지요.예나 지금이나 바깥에서는 농담도 곧잘 하는데 집에선 근엄한 점도 똑같고…』라고 답한다.
그런게 답답해 가끔 부부싸움도 했지만 철학의 대가인 남편의 논리에 번번이 져서 나중엔 싸움도 포기했는데 그러고나니 오히려편안해지더란다.
그는 자녀(2녀1남으로 모두 결혼하고 현재 건국대 철학과 교수인 막내아들 내외와 함께 살고 있다)들에게도 잔소리라는걸 해본 기억이 없다.
『선생님은 자식들에게 돈 물려주는건 딱 질색이세요.노력의 대가가 아닌 돈은 되레 자식을 버린다는 지론이에요.』 이씨는 그렇지만 남편이 4~5년전 사재(私財)를 거의 몽땅 털어 「철학문학연구원」을 만들때 자신에게 한마디 상의도 하지않은 것은 지금도 섭섭하다고 털어놓는다.
자신도 「사회활동을 해봤더라면…」하는 미련이 없지 않았다는 이씨.그러나 남편과 자식들의 삶을 떠받치는 자신의 역할에서 무한한 보람을 느낀다는 그에게서 「영원히 가치있는 모습」으로 인식될 수밖에 없는 현모양처(賢母良妻)의 모습을 다 시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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