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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 자 天下의 강자 되리라

중앙일보

입력

이코노미스트 인수합병(M&A)은 기업 몸집 키우기의 핵심 전략이다. 지역 고속버스회사에서 출발한 금호아시아나그룹이 한진그룹과 어깨를 나란히 한 것도 성공적 M&A 덕분이다. STX가 세계 조선업계의 다크호스로 떠오른 배경도 마찬가지. 그렇다면 M&A 시장의 최대어로 손꼽히는 대우조선해양 M&A는 재계 판도를 어떻게 바꿔놓을까.


대우조선해양의 인수전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인수 의사를 밝힌 기업만 해도 포스코그룹, GS그룹, 두산그룹, 한화그룹 등 4개사다.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STX 등 기존 조선업체들도 겉으론 “관심 없다”고 손사래를 치지만 내심 인수기회를 엿보고 있다.

대우조선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떠오른 이유는 간단하다. 무엇보다 부실자산이 전혀 없다. 현금 보유액이 2조원을 넘는다. 매출 및 영업이익 규모도 상당하다. 지난해 매출은 7조1000억원. 올해는 37% 증가한 9조7336억원에 달할 전망이다. 영업이익 또한 지난해 대비 160% 뛴 7892억원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이는 주요 조선업체 가운데 최고 매출 및 영업이익 증가율이다. 이뿐 아니다. 지난해 계약 수주액은 무려 40조원에 달한다. 계약부터 인도시기까지 대략 3년 걸린다는 점을 감안하면 2011년까지 일감이 확보돼 있는 셈이다.

대우조선 M&A가 주목되는 이유는 또 있다. M&A 결과에 따라 재계의 판도 변화가 크다. 대우조선의 자산 규모는 8조2825억원(18일 종가 기준)이다. 이에 따라 이 기업을 인수하면 몸집이 훌쩍 커진다.

재계 서열 9위 포스코그룹(총 자산 38조5000억원)이 대우조선을 먹으면 자산 규모가 46조8000억원으로 늘어나 롯데그룹(43조7000억원)을 제치고 7위로 껑충 뛰어오른다. 재계 서열 15위권을 맴돌던 GS그룹(31조1000억원)도 대우조선을 거머쥐면(39조4000억원) 한국도로공사(38조8000억원), 포스코그룹을 따돌리고 10위권 내에 진입한다.

재계 서열 16위 한화그룹(20조6000억원)과 17위 두산그룹(17조원)도 마찬가지. 한화그룹의 인수시, 총 자산규모가 28조9000억원으로 늘어 KT그룹(27조1000억원·13위), 금호아시아나그룹(26조7000억원·14위), 한진그룹(26조3000억원·15위) 등 쟁쟁한 기업을 따돌릴 수 있다.

두산그룹(17조원)이 인수하면 총 자산이 25조3000억원으로 증가, 한진그룹을 턱밑까지 추격한다. 대우조선 M&A가 재계 서열을 몇 계단씩 끌어올리는 절호의 기회인 셈이다.

대우조선 M&A가 조선업계에 미치는 영향도 만만찮다. 조선업계의 판도 변화도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대우조선의 인수 여부를 아직 밝히지 않은 주요 조선업체들이 ‘강 건너 불구경’하기 어려운 이유다.

영국의 조선해운 전문분석기관 ‘클락슨’이 지난 1월 발표한 세계 조선업체 순위(수주잔량 기준·CGT/표준화물선 환산t 수)에 따르면 현대중공업(1401만9000CGT), 삼성중공업(1078만9000 CGT), 대우조선(1000만8000CGT)이 1~3위를 차지했다.

그 뒤를 현대미포조선(513만4000CGT), STX조선(445만3000 CGT), 현대삼호중공업(431만1000CGT)이 쫓고 있는 형국이다. 그야말로 현대미포조선, 현대삼호중공업을 계열사로 둔 현대중공업의 독주체제다.

하지만 삼성중공업이 대우조선 M&A에 성공하면 현대중공업의 공고한 아성은 단번에 무너진다. 삼성중공업의 수주잔량이 2079만7000CGT로 늘어나기 때문. 이는 현대중공업·현대미포조선·현대삼호중공업 수주잔량을 모두 합친 것(2346만4000CGT)과 비슷한 수치다.

조선업계 5위인 STX조선이 인수하면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은 ‘업계 양대산맥’이라는 화려한 닉네임을 내놔야 할 처지에 몰린다. 실제 STX조선이 대우조선을 품에 안으면 총 1446만1000CGT의 수주잔량을 기록, 1위 자리를 꿰찰 수 있다. 조선업계 다크호스에 머물던 STX조선이 강자로 급부상할 수 있다는 얘기다.

조선업계의 주력상품인 VLCC선, LNG선 등 각종 선박도 대우조선 M&A 영향권에 있다. 30만t 내외의 유조선을 통칭하는 VLCC선박의 1위 업체는 대우조선이다. ‘클락슨’ 자료에 따르면 2007년 말 현재 대우조선의 VLCC 누적 건조량(수주잔량+인도실적)은 대략 125척 내외.

2위는 120여 척을 기록한 현대중공업이고, 별다른 실적이 없는 삼성중공업, STX조선은 5위권 밖에 머물러 있다. 이 때문에 삼성중공업, STX조선 중 어느 한 곳이 대우조선을 인수하면 VLCC 선박의 판도는 바뀔 가능성이 크다.

LNG선 역시 대우조선 M&A 결과에 따라 희비가 엇갈릴 전망이다. ‘클락슨’에 따르면 2007년 말 현재 LNG선박 시장은 대우조선(80여 척)과 삼성중공업(77여 척)이 양분하고 있다.

40척을 간신히 넘긴 현대중공업은 이 분야에서 절대 약세다. 하지만 현대중공업이 대우조선을 인수하면 총 120여 척의 LNG선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현대중공업으로선 약점을 보완할 수 있는 반면 삼성중공업은 핵심 강세 분야를 잃어버리는 셈이다.

조선업계의 새로운 캐시 카우로 불리는 부유식 시추선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생산용 시추선을 의미하는 Semi-Rig의 경우, 올 2월 현재 18여 선을 건조한 대우조선이 세계 1위를 고수하고 있다. 반면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의 Semi-Rig선 건조능력은 취약한 편이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조선업계의 신성장동력은 부유식 시추선인데 이 분야에서 대우조선은 강세,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은 약세를 보이고 있다”며 “대우조선 M&A 결과에 따라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의 입지가 달라질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말했다.

M&A는 기업 확장의 핵심 전략 중 하나다. 대형 M&A를 둘러싸고 라이벌 기업들의 경쟁이 치열하게 펼쳐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김영진 M&A연구소 김영진 대표는 “대우조선을 거머쥐면 세계 조선업계의 절대 강자가 될 수 있다”며 “조선업체와 비조선업체 모두 대우조선 M&A에 눈독을 들이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김 대표는 또 “특히 대우조선을 시작으로 하이닉스반도체, 현대건설 등 대형 M&A 매물이 쏟아질 것으로 보여 재계의 서열이 한바탕 요동칠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우조선 인수전 秘史

뉴질랜드 마우리족도 탐냈다

1999년 8월 26일. 대우그룹 12개 계열사에 대한 워크아웃이 전격 결정됐다. 대우중공업에서 대우조선을 분리할 계획을 세운 것도 이 무렵. 2000년 10월 23일 대우조선은 결국 독자생존의 길을 모색하게 된다. 하지만 대우조선의 운명은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들 정도로 어두웠다.

대우조선의 적자폭이 너무도 컸기 때문이다. 바로 그때, 뉴질랜드 원주민 마우리족(族)이 대우조선 인수를 희망하고 나섰다. 미국, 영국 등지에서 인수자금을 확보할 계획이라고 선언한 마우리족은 20여 명의 실사단을 파견, 무려 25일간 대우조선을 샅샅이 살폈다.

김우일 전 구조조정본부장은 “대우조선 매각작업은 구조조정 차원에서 진행됐기 때문에 공개경쟁입찰이 아니었다”며 “이 때문에 마우리족이 실제로 인수자금을 마련했다면 대우조선은 원주민의 회사가 됐을 가능성도 있었다”고 회상했다.

김 전 본부장은 이어 “하지만 그들은 인수자금을 마련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거의 빈털터리였던 것으로 기억난다”며 “2~3차례 실무진과 접촉이 있었지만 이들의 인수계획은 한낱 공수표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한때 조선업계를 술렁이게 만들었던 원주민 마우리족의 ‘대우조선 인수작업’은 단순 해프닝으로 막을 내렸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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