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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냐. 아직도 사랑하기 위해 산다고! '사랑'이란 단어는 내 인생에 없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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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1970년대 통기타를 둘러메고 시대의 낭만과 저항을 노래했던 조영남과 양희은이 만났다. 지금은 같은 방송사에서 1·2위를 다투는 라디오 프로그램 진행자로도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조영남과 양희은이 7080의 어제와 오늘을 이야기했다.


MBC 라디오 청취율 1위 프로그램 DJ와 2위 프로그램 DJ가 만났다. <지금은 라디오시대>의 조영남과 <여성시대>의 양희은의 만남이다.

2006년 11월 MBC <지금은 라디오시대> 진행을 맡으며 라디오 진행자로는 늦깎이 데뷔한 조영남은 어눌한 말투 때문에 한때 방송 부적합 인물로 낙인찍힌 적이 있는 인물. 하지만 자연스러움이 부각되며 조영남이 진행하는 프로그램은 전체 라디오 방송을 통틀어 청취율 1위를 고수하고 있다.

역시 MBC 라디오 간판 프로그램인 <여성시대>의 안방마님 양희은(57)은 1971년 데뷔 때부터 라디오 방송을 진행한 베테랑 중에서도 베테랑 진행자. <여성시대>만 만 9년째다.

입담 좋기로 둘째 가라면 서러운 이 두 진행자가 만난 날은 마침 18대 총선이 있던 4월9일 저녁. 인터뷰는 화기애애하다 못해 뜨거웠다. 1970년대 통기타시대를 함께 살아온 이 두 사람의 대화는 낭만의 시대를 대변했던 명동 음악카페 ‘오비스캐빈(OB’s Cabin)’에 대한 추억부터 종교와 구원, 사랑까지 경계를 넘나들며 진행됐다.

조영남 너, 라디오 몇 년 했냐.

양희은 1971년부터 지금까지니까 38년. 미국에서 살던 거 빼면 29년, MBC에서만 만 9년. 서울에 있으면서 라디오를 안 한 적은 없어요.

조영남 아, 그래! 그럼 라디오와 텔레비전이 다른 게 있어? 나는 지금 시작해서 아직 잘 모르겠는데.

양희은 저는 카메라공포증이 있어요. 카메라가 버티고 있으면 하던 짓도 제대로 못하고 아주 머쓱하고 굳어요. 나답지 않고. 라디오는 언제나 제가 저다워 좋아요.

조영남 그러면 후배들한테 라디오를 하라고 적극 권하냐.

양희은 아뇨. 사람의 유형에 따라 다른 것 같아요.

조영남 가령? (라디오를) 할 수 있는 유형은.

양희은 범생이! 뜻밖의 범생이. 그 아이 속에 범생이 기질이 있어야 해요. 매일 일수를 찍을 수 있을 자신이 있으면 가능하죠.

조영남 내가 1년 반 동안 한 번도 결석 안 하고 일수를 찍은 것을 보면, 내가 좀생이지?

양희은 좀생이하고 범생이는 달라요. 형 속에도 범생이 기질이 있는 거죠.

조영남 글쎄. 그런 것 같다. 그런 범생이 기질은 반드시 있어야 하는 거야. 참, 35년? 38년? 뭐 콘서트 한다고 했잖아?

양희은 아아~. 콘서트요!

“데뷔 38년, 아직도 무대공포증 있어”

조영남 언제야?

양희은 5월30일부터 6월1일까지 3일간.

조영남 어디서?

양희은 ‘마포아트센터’라는 조그만 소극장에서 시작해요. 전국투어 돌고 11월에 다시 서울 충무아트홀에서 끝내고요. ‘38주년’ 이런 수식어 없이 해마다 하던 거예요. 이번에는 세종문화회관이나 이런 것도 다 싫어서 소극장에서 하고요.

조영남 그럼, ‘양희은 전국투어’인가.

양희은 서울은 ‘봄소풍’으로 이름지었어요. 지방은 계절이 또 바뀌니까. 가을이 되면 ‘가을소풍’이라고 해야죠.

조영남 몇 군데나 가?

양희은 지금은 생각하는 것은 6개 도시요. 더 늘 수도 있고요. 저는 소극장이 제 체질이에요. 소극장이 참 편안해요. 대극장은 또 무대공포증이 있어서 덜덜 떨어요. 아주 죽겠어요.

조영남 왜, 햇수 걸고 하는 것 있잖아! 30주년이니, 40주년이니 이런 거 어떻게 생각해. 나는 자꾸 늙었다는 것을 사람들한테 알리는 것 같아 뭘 굳이 그러느냐 싶은데…. 한 50주년은 돼야 걸고 할 만하지 않을까 싶어.

양희은 패티 김 선생님처럼 50주년 정도면 기념비적 콘서트라고 할 수 있죠. 저야 뭐, 해마다 한 번도 안 거르고 하던 콘서트니까 올해도 그냥 하는 것이고요.

분위기가 익어감에 따라 양희은의 목소리가 빠르고 굵어진다. 양희은 특유의 또박또박 끊어서 말하는 도전적 목소리도 불쑥불쑥 튀어나왔다.

1971년 9월 김민기의 <아침이슬>로 데뷔한 양희은은 <작은연못><거치른 들판에 푸르른 솔잎처럼> 등 통기타와 청바지로 대변되는 포크음악과 청년 저항문화의 중심에 서 있었다. 데뷔곡 <아침이슬>은 그의 의지와 상관없이 김민기와 함께 ‘참여’의 상징이 됐다.

조영남 <아침이슬>로 양희은이라는 이름이 알려지면서 숙명적으로 저항가수로 얘기될 때 그걸 어떻게 소화했어.

양희은 누가 뭐라고 하든 상관 안 했어요. 그런 건 언제나 기자들이 굵은 제목으로 뽑는 거 아녜요? 뭐라고 이름 붙이든, 그게 나 사는 것과 별로 상관이 없더라고요. 저항가수든 아니든, 내 20대는 언제나 고단했고 등록금 마련하느라 급급했으니까. 그래서 뭐, 내가 스스로 저항한다고 생각도 안 했어요.

조영남 그래서 정치에 관여한 것도 아니고?

양희은 저는 본래 정치에 관심 없었어요.

조영남 그건 나랑 똑같다.

양희은 우두머리에 서려고 한 적도 없고요. 맨 앞에 선 것은 언제나 등 떼밀려서야. 저는 극소심 A형이거든요. 아무튼, 초등학교 2~3학년 때부터 언제나 뽑혀서 교단에 서 있었어요. 애국가 제창, 교가 선창, 응원, 이런 것 다 애들이 시켜서 했어요.

조영남 그래서 경기여고 동기생들이 희은이가 노래 잘한다는 걸 다 알았던 거구나!

양희은 오히려 품팔면서 노래가 예전만 못하다고들 했죠.

조영남 그러면서도 가수가 된다는 걸 꿈꾼 적은 없고?

양희은 한 번도, 조금도 없었어요. 저는 기자나 PD가 꿈이었어. 그 꿈은 지금도 있어요.

조영남 고등학교 때도 그 생각을 했어? 기자나 프로듀서가 되고 싶다고?

양희은 그럼요. 신방과 썼다 떨어져서 재수했잖아요.

“‘저항가수’라고 생각해본 적 없어”

조영남 (뜻밖이라는 듯) 그래?

양희은 그러고 사학과 갔는데, 그것도 좋은 PD나 기자가 되려면 역사를 알아야 한다고 해서 간 거예요.

조영남 야~아. 그러면 너 가수 해도 되겠다고 한 것은 누구냐?

양희은 아무도 없었어요. 학생 아르바이트였죠. 라디오 PD들이 공모해서 너 음반 하나 내라고 해서 냈죠.

조영남 라디오 PD들이? 그 PD들이 네 노래를 어떻게 듣고.

양희은 오비스캐빈!

조영남 (식탁을 손으로 두드리며) 아아~. 오비스캐빈에서 아르바이트 했구나~. 오비스캐빈 어떻게 들어갔어.

양희은 리허설해서…. 내가 돈이 필요했으니까.

조영남 야, 나도 거기서 아르바이트 했던 것 아냐?

양희은 그럼요.

조영남 나는 그때 참 괴로웠던 게, 오비스캐빈 아래층에 로댕의 헤라클레스 상이 있었어. 이렇게 활 쏘고 있는….

양희은 맞아! 맞아! 있었어.

조영남 주인이 헤라클레스상 불알 앞에 의자를 놓고 노래하게 했어. (고개를) 돌리면 헤라클레스의 성기가 내 얼굴에 딱 닿는 거야.(일동 웃음) 돌아버려~. 그때는 내가 소심하니까 자리를 옮겨달라고 말도 못하고 만날 그거 보면서 ‘아이~씨, 아이~씨’ 하면서 노래했지.

양희은 형, 월급은 가져가셨어요?

조영남 나 거의 못 타갔어. 애들이 와서 외상 놓고 가는 바람에.

양희은 그런데, 그때 주먹들이 와서 빼앗아 갔다고 하데?

조영남 아냐. 그렇지는 않았어.

양희은 (윤)형주 형하고 (송)창식이 형은 명동에서 노는 사람들이 다 빼앗아갔대.

조영남 그놈들은… 애들이 남루하고, 생긴 것이 초라해 보여 그런 거야.

양희은 그래도 싸움은 형주 형이 잘했다며….

조영남 그래. 싸움은 형주가 잘했지.(옛 생각에 즐겁다는 듯이) 허허허….

양희은 그런데, 형이 개입하면 꼭 곤란해진다고 그러데. 간단히 끝날 싸움도 있는 대로 벌여놓고 형은 튄다고 하데.

조영남 하하하하. (화제를 돌리듯)그래서 PD들이 노래를 시켰구나?

양희은 네. 그때 PD들이 섭외하러 혹은 자료를 빌리러 늘 와 계셨어요.

조영남 그러다 김민기를 먼저 만나냐, 김민기의 <아침이슬>을 먼저 만나냐?

양희은 김민기를 먼저 만나죠.

조영남 어디서 만났냐.

양희은 (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목소리를 높여) ‘청개구리’죠. 우리 만날 거기서 떼지어 있었는데. 형 빼놓고는 그때 음악 잘하던 대학생들은 다 청개구리에서 놀았어요.

조영남 나는 그때 미국에 건너가서 없었지, 아마?

양희은 미국에 간 것이 아니라, 형은 그때 이미 <쇼쇼쇼>에 출연하고 있었죠.

조영남 아~, 나는 메이저를 뛰고 있었구나. 아무튼, 청개구리에서 김민기를 만났구나.

양희은 만난 게 아니라, 그냥 본 거죠.

조영남<아침이슬>의 출현이 어떻게 되냐?

양희은 그때는 우리가 우르르, 와르르 다 몰려다닐 때잖아. 김민기 서울대 미대 동기 중 내 친구가 많았어요. 그래서 어디를 갔었는데, 어떤 바리톤이 기가 막힌 노래를 부르고 있는 거야. 내가 저게 무슨 노래냐고 했더니 김민기가 만든 <아침이슬>이라고 하더라고. 그래서 저 악보를 구할 수 있느냐고 했더니, 김민기가 찢어 버렸대. 그래서 내가 (그 악보를) 주워서 지금까지 가지고 있죠. 그러다 라디오 PD들이 판 내라고 야단할 때, 김민기가 자기도 안 부른 제 노래를 내가 부르게 해줬죠. 반주도 해주고. 그리고 서너 달 후 김민기 음반이 나왔어요.

김민기는 ‘빛나는 청춘’이었다

조영남 나는 김민기를 내가 만난 인간 가운데 가장 결이 고운 인간으로 보거든. 성질은 지랄같지만, 결은 고운 인간. 너는 어떻게 보냐?

양희은 그건 선배의 시선이고, 나는 ‘빛나는 청춘’이었다고 생각해요. 영롱하고 천재성이 있는…. 말과 멜로디가 그렇게 아름답게 들러붙을 수 없었지.

조영남 사람으로 봤을 때는….

양희은 음… 결이 곱다는 것은… 나는 느껴본 적이 없는데?(웃음) 나는 (김민기의) 제동국민학교 1년 후배잖아. 윗사람이 보는 것과는 다르겠지. 답이 됐죠!

조영남 어. 그 점은 너랑 나랑 다르구나.

양희은 (옛 생각을 하듯) 젊은 날의 우상이었어요.

조영남 나는 <딜라일라> 판 나오고 알려지면서 대학생에서 가수로 완벽히 변신했거든. 너는 그것이 <아침이슬>인가.

양희은<아침이슬><세노야><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 동시에 1971년에 나왔어요.

조영남 아무튼, 네가 그렇게 가수가 된 거구나.

양희은 그런데, 저는 가수가 되려고 한 적도 없었어요. 믿거나 말거나 내 스스로 가수가 목표인 적도 없었고, 노래를 한다고 해서 내 스스로 가수라고 규정지은 적도 없어요. 하지만, 노래를 해서 돈을 벌면 이미 프로 가수죠. 세상 사람들 상식으로는 그렇게 마침표를 찍죠. 저를 보고 사람들이 방송인 양희은이라고는 안 하거든요, 가수 양희은이라고 하지.

조영남 남들이 지칭하는 것에 대해 불만은 없고….

양희은 네.

조영남 데뷔 앨범 사진에, 청바지를 입은 것이 1971년인데, 그때는 청바지가 드물었잖아. 누구 아이디어였냐.

양희은 저는 엄마가 고등학교 때 사줘서 처음 입었고, 데뷔 때는 친구가 청바지를 선물로 줬어요. 그때 제 무대의상이 친구가 준 청바지 한 벌과, 역시 친구가 아르바이트 해서 맞춰준 와이셔츠 세 벌이었어요.

조영남 청소년 때 신문기자나 PD가 꿈이었다며… 그 뒤에 꿈이 바뀌지는 않았나.

양희은 지금도 신문기자나 PD를 보면 선망하다 못해 화딱지가 나. 내가 저게 됐어야 하는데. 그게 있어요. PD연합회 같은 데 와서 연설하라고 하면 엄청 주눅들고 ‘버벅거리고’ 그래요. 아직도 콤플렉스가 있는 것이죠.

조영남 나는 그룹사운드의 기타리스트가 꿈이었지만, 안 됐어도 그에 대한 콤플렉스는 없어.

양희은 나는 있더라고요.

조영남 처음 <아침이슬>이 방송불가 판정 받았을 때는 어떻게 소화했냐?

양희은<아침이슬>만 금지됐지 다른 노래는 다 방송 가능했어요. 그때도 동양라디오에서 청취율이 좋은 DJ로 잘나갔고요. 또, 대학 축제나 오비스캐빈에서 신청곡으로 들어오면 <아침이슬>도 불렀어요. 방송만 불가였지, 라이브 무대에서는 부를 수 있었거든요. 사실, 저는 금지한 사람들이 머리를 잘못 썼다고는 생각했어요. 금지됨으로써 노래 동아리에서 애들이 무섭게 배웠잖아요.

조영남 쭉 가수 일 하다 미국에 간 것인가? 중간에 한 번 중단하지 않았나?

양희은 배낭여행 갔었죠.

조영남 뭐하러. 왜 그걸 하게 됐냐?

양희은 어떤 전기가 있어서 노래 말고 새로운 길을 찾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노래만 아니면 다 잘할 것 같았어.

조영남 전기라면 구체적으로 뭐였지?

양희은 아, 뭐, 터닝포인트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어요. 물리적으로 거리를 두고 떠나보고 싶기도 했고. 그때는 여권을 얻기 힘들었잖아. 근데, 누군가가 나한테 여권을 만들어 줬어.

스물여덟 배낭여행에서 신을 만났다

조영남 혹시, 사랑이 여의치 않아서 간 것은 아냐.

양희은 그렇지 않아요.

조영남 그러면, 사랑 문제는 어땠냐.

양희은 사랑은 나한테 속한 것이 아니라는 결론이에요. 나는 내가 굉장히 사랑한다고 생각했던 20대에 내 스스로 한 약속도 변절되니까. 내가 변하니까.

조영남 가령, 어떤 사람에 대한 생각과 마음이….

양희은 사랑이라고 함부로 말하기 싫더라고. 집착 같은 것이었던 것 같아. 그런데, 나한테는 사랑보다 급했던 것이 내 속의 혁명이었어. 나를 바꿈으로써 사람이 다시 돼야겠다는. 나를 절벽으로 조금 밀어붙이고 싶은 생각도 있었어요. 벼랑 끝까지. 내가 나를 보니 애가 썩어 문드러졌더라고.

조영남 그 배낭여행이 인생에 무엇을 줬지.

양희은 그 여행이 나한테 참 소중한 것을 줬어요. (잠시 생각하다) 여행 갔다 와서 겉으로 하나도 변한 것 없이 똑같이 방송하고 노래하고 했지만, 내 속은 진짜 많이 달라져 있었어. 감히 말한다면, 왜 살아야 하는지 깨달았던 것 같아.

조영남 뭘 보고, 뭘 느꼈기에.

양희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성경!

조영남 (움칫, 전혀 뜻밖이라는 듯이) 성경? 어서 주웠어?

양희은 한상범 씨 집에서 하나 얻어 가지고 다니면서 읽었어요. 그런데 모르겠더라고. 미치겠더라고.

조영남 재미없잖아!

양희은 재미없죠. 선문답 같죠. 그런데 알고 싶었어요.

조영남 왜.

양희은 음… 부활이 있으니까. 죽고 다시 살았다니까.

조영남 그게 호기심이 생겼다는 것이지? 이야~. 하하하하. 호호호호….

양희은 (심각하게) 왜. 왜, 웃어요, 왜 웃어. 나는 그런 것에 대한 호기심은 우리 아버지가 돌아가신 열세 살 때부터 사실 있었어요. 죽고 난 다음은 끝일까, 아니면 죽고 난 다음에도 뭐가 있을까? 늘 그 의문이 있었어요.

조영남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지.

양희은 나 열세 살 때. 우리 아버지 한국 나이로 서른아홉에.

조영남 기억이 단편적으로 나겠구나.

양희은 아~뇨. 너무 선명하게 있죠. 내가 맏딸인데. 그 사랑을 내가 얼마나 받았는데. 나는 노래 시작했을 때, 사람들이 나한테 너무 계집애가 튄다고 했거든. 그 기저에는 우리 아버지가 있어. 우리 아버지는 아들 없이 딸 셋을 키우면서 나에게 굉장히 사내 몫의 여러 가지를 기대했어. 또 그만큼 아낌없이 사랑과 지지를 해 주셨고. 우리는 집에서 남녀차별을 받아본 적이 없어요.

조영남 그래서 성경에서 해답을 얻었어.

양희은 예. 저는 성경에서 답을 얻었어요.

조영남 그 답을 얻는 데 얼마쯤 걸렸냐. 이 책이 바로 그것이다라는 답을, 읽기 시작해서 얼마나 걸렸어.

양희은 거의 반년 넘어. 성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독파했어요. 거기에 비밀이 있더라고요.

조영남 그래서 신앙인이 된 거야.

양희은 네. 종교인이 아니라 신앙인이 됐죠. 교회나 목사랑 상관없이 저는 믿어요.

조영남 그 초심이 지금도.

양희은 네. 지금도 변함없이. 왜냐하면, 내가 잡은 것이 아니어서.

조영남 어!

구원에도 화학법칙처럼 ‘조건’이 있다

양희은 잡아 주신 것 같아요. 내 힘으로 잡았다면, 내 힘이 떨어지면 놓잖아. 근데, 그런 것 같지 않아요. 언제나 한결같지.

조영남 그럼, 네 생각에 너의 주인이 조영남한테는 관심이 없는 것이냐? 너한테만 관심이 있고. 나 같은 사람은 왜 안 잡아 주냐? 너만 잡고.

양희은 형, 나는 영혼에도 조건이 있다고 생각해. 물리나 화학의 법칙처럼.

조영남 뭐?

양희은 가난한 마음!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고 하잖아? (마음이) 가난한 순간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나는 처음으로 죽음을 생각했어. 이게 무슨 얘기인지 모르겠더라고.

조영남 아아~. 그래서 마음이 가난한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 거야.

양희은 나는 양껏 가난했다고 생각해. 나는 머리로는 낮아질 대로 낮아졌다고 생각해.

조영남 무엇을 근거로 그런 말을 하지.

양희은 내가 힘이 없었으니까. 내가 하나님 또는 절대자 앞에서 믿을 것이 없고, 버틸 것이 없었으니까. 그전까지는 내가 어떤 일을 할 때 생각하고 그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면 됐거든. 근데, 이것은 내가 굉장히 믿고 싶지만, 믿어지지가 않았어. 믿고 싶은데 안 믿어져. 예를 들어, 이제부터 이를 하루에 세 번 닦겠다고 했을 때, 생각의 흐름이란 것이 ‘왜 세 번 닦아야 하지? 안 닦으면 충치가 생기는데, 그러면 너무 힘들고 아프잖아? 그럼 이제부터 하루에 이를 세 번씩 닦자’ 하고, 다음날부터 닦으면 되잖아? 그런데, 이 문제는 안 그렇더라고. 내 머리로는 너~무 원해. 알고 싶어한다고. 나는 중학교 졸업 앨범에 장래 희망을 ‘마음의 평화’라고 썼던 애야. 너무 웃기는 애지?

조영남 우하하하하(박장 대소)….

양희은 중학교 때부터 나는 마음의 평화를 원했어. 삶과 죽음을 생각하면 골이 시끄러웠어. 좀 평화롭고 싶었다고. 그런데, 이 재미없는 종교 얘기는 왜 하는 거야? 형. 교양 있는 사람들이 만나서 정치나 종교 얘기는 안 하는 것이 좋지 않아?(웃음)

조영남 왜. 종교 얘기는 왜 하면 안 돼? 정말 좋은 세계라면 남한테 권하고 싶지 않아.

양희은 가까운 사람한테는 다 권했어요. 그런데, 그 사람이 굉장히 곤하거나 지쳐 보이면 내 입에서도 뭔가 얘기가 던져지지만, 그렇지 않으면 쉽게 입에서 나오지 않더라고. 내가 길거리 전도사도 아니고.

조영남 평소에는 종교인이라는 티를 안 내지.

양희은 안 내요. 나는 그게 싫어. 통기타 가수들이 음반이 안 되고 많이 힘겨우면 뭐 가스펠도 하고 또 교회마다 불려가는 친구들도 있는 걸로 아는데, 저는 안 가요.

조영남 왜.

양희은 그것이 입이 열릴 때가 있는 것이지, 기계처럼 자리를 마련하면 언제나 앞에서 할 일이 있는가? 순리대로 하게 되면 하는 것이지 일부러 인위적으로 스케줄을 짜서 이 교회 저 교회 다닐 일이 있는가? 그렇게 생각해.

조영남 양희은이 성경이나 종교에 의지하고 산다는 얘기를 듣기가 싫은 건가?

양희은 상관없어. 사람의 기준은.

조영남 어~어~. 아주, 그것이 나와 다른 점이야.

양희은 형은 사람의 기준에 움직여? 물론, 나도 상식적인 사람이야. 하지만, 우리가 누가 착하다, 혹은 나쁜 사람이다라고 할 때, 우리는 자기 나름의 굴절된 거울을 가지고 있잖아?

조영남 그렇지.

양희은 내 생각은 그런 걸 서로 비춰보면서 좋다 나쁘다 할 필요가 있나 싶어. 사람끼리는 나는 그냥 ‘퉁’치자고 생각해. 근데, 형 그거 알아? 형이 나한테 지금이랑 똑같은 질문을 1983년에 문경새재를 넘으면서 했던 것.

조영남 (진지하게) 어, 그랬니.

양희은 내가 그때 <한국 청년이 본 예수>라고 형이 쓴 책을 다 읽었어. 형은 어떻게 책 제목도 이렇게 뽑을까 하면서.

조영남 그럴 수 있지. 난 기억력이 없으니까. 아무튼, 재미있어. 너한테서 이것이 굉장히 재미있는 분야야.

양희은 사람들은 내가 암 수술하고 나서 신앙을 갖게 된 줄 알아요.

“1981년 여름에, 석 달 살고 죽는다고 했어”

조영남 참, 암 수술은 언제 했니.

양희은 그 후에 귀국해서 1981년 여름에. 석 달 살고 죽는다고 했어. 14개월 동안 돌아다니고 이제 좀 살아보려고 하는데, 또 거 석 달 산다고 하니까. (잠시 침묵 후) 뭐, 할 수 없지. 내가 숨을 쉬고 살아 있다고 해도 그것이 내 것은 아니잖아? 내가 죽고 싶다고 죽고, 살고 싶다고 사는 것이 아니잖아.

조영남 의학치료를 얼마나 받았냐.

양희은 하나도 안 했어요. 내가 아무것도 안 받겠다고 했어. 그래서 의사 선생님이 나 붙잡고 울었어. 너무 기막혀 했지.

조영남 그럼, 산 것이 신앙의 힘인가? 하나님의 능력이야.

양희은 그것은 모르죠. 어쨌든, 뜻이 있겠죠.

조영남 그러면, 20대 이후 너의 성숙한 인생에서는 상실이라든가 실패라든가 좌절이라든가, 그런 단어는 없나. 그 중 가장 큰 것은 뭐였니.

양희은 남편이 아팠던 기억. 아주 괴로웠어요. 보는 것이 더 괴로워. 나한테 가장 힘들었던 것은 그거야.

조영남 그런 숙명적 좌절은 말고. 네 의지대로 했는데, 상실감을 느낀 적은 없어?

양희은 (작은 목소리로) 그런 것은 크게 없는데요.

조영남 그렇게 사는 것 재미없지 않냐?

양희은 그냥 사니까 사는 것이지.

조영남 취미는 있어? 네 취미가 강아지 기르는 거냐?

양희은 나는 취미도 없어요. 나는 남들하고 잘 안 놀아서 혼자 있지. 기본적으로 책은 늘 읽어야 하니까, 그것 말고는…. 나는 대타 노동력이 없어요. 그냥 보통여자처럼 살림해요.

조영남 강아지 두 마리 키우는 것을 취미라고 생각하지는 않니?

양희은 그것은 취미가 아녜요. 대단한 책임과 의무를 동반하는 것이지. 룰루랄라 즐기는 것만 있는 것이 아녜요.

조영남 취미생활을 전혀 않고 사는 것이 재미없지 않아.

양희은 너무 바빠요. 밴드 애들 밥 다 해 먹이죠. 집에서 연습하죠. 개 간수해야죠. 장봐야죠. 반찬 해야죠. 일상생활이라는 것이, 쉰 일곱에 방송하는 여자가 취미를 확보할 여유가 있다고 보세요. 진짜 가사노동의 강도를 쥐뿔 알지도 못하는 얘기야.

조영남 가사노동을 아웃소싱하면 되잖아.

양희은 내 집에 남이 와서 내 살림을 다 뒤적이는 것이 싫어요.

조영남 하하. 이해가 간다. 내가 결혼을 안 하는 이유도 그거야. 내 방에 다른 사람이 들어오는 것이 싫어.

양희은 나는 코디도 없고, 심지어 운전도 매니저가 안 하고 내가 해요. 내가 이 열린 직업을 가지고 있지만, 반대로 아주 지극히 폐쇄적이고 자폐 증세가 있어. 나만의 동굴이 확보돼야만 방전이 안 되고, 충전돼.

조영남 아~.

양희은 저는 일단 사회생활 안 하거든요. 남하고 저녁을 먹는 것이 몇 년 만이에요. 언제나 집에서 내가 한 밥을 먹어요. 희경이네나 오고 가지, 이렇게 밖에 나와서 안 먹어요. 우선, 시간이 거의 없어요. 새벽같이 일어나 여의도공원을 두 바퀴 돌고, MBC 분장실에 가서 샤워하고, 아침에 온 편지들 읽고, 방송 하고 나면 11시야. 그 다음에 1~4시까지는 다른 방송 출연이나 인터뷰하고…. 나도 관리해야 하니까 미장원에 가서 두피 관리도 받고. 그러고는 종종걸음 쳐서 집에 가서 밥 안치고 또 반찬 하고. 또 아침이면 내 도시락이랑 매니저 도시락이랑 도시락을 싸가지고 나오니까.

조영남 왜? 사먹으면 안 되니.

양희은 나는 가스 때문에 못 먹겠어. 가스가 붕붕 생겨서 노래를 할 수가 없어. 뱃속이 뒤집어지는데 어떻게 해? 이렇게 살다 보니 정말 나를 위한 시간이 반드시 필요한데, 그것이 내가 혼자 여의도공원을 산책하는 1시간15분과 운전하는 시간이 전부지. 그것이 내가 나를 관리하는 방법이기도 하고. 여러 생각과 콘서트의 곡을 결정하는 순간이기도 하고….

조영남 너무 스스로 들들 볶는 것 아냐.

양희은 아휴~. 할 수 없죠. 성질이 이러니까. 언젠가 못 이기면 다 놓겠죠.

조영남 너는 사랑을 딱 한 번 했잖니.

양희은 아니, 나는 사랑을 한 번도 안 했어.

조영남 네 남편 조중문 서방과의 사랑도 사랑이라고 생각하지 않냐.

양희은 어. 굉장히 좋아해. 결혼이라는 것을 처음 생각했으니까.

조영남 근데, 왜 사랑이라고 생각 안 해?

양희은 나는 일단, 사랑은 ‘오래 참고’라는 것에서, 오래 못 참아.

조영남 네 남편한테는 그랬잖아.

양희은 아휴~. 안 그래. 겉으로야 변화가 없다고 해도, 속으로 오래 참지 못할 수도 있지.

매일 아침 매니저 도시락까지 싸서 출근

조영남 사랑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다는 것이 부끄럽지는 않냐!

양희은 아니, 안 부끄러워.

조영남 왜, 안 부끄럽다는 것을 그리 크게 얘기하냐!

양희은 안 부끄러우니까. 형은 사랑이 명제잖아? 형은 끝내 사랑이 꿈이잖아? 나는 아냐. 나는 못해. 나는 좋아하기는 해. 딱 그만큼이야.

조영남 이 얘기를 조 서방이 들어도 돼?

양희은 알아. 우리 신랑이 I love you(사랑해) 하면, 나는 I don’t love you. I like you(나는 사랑 안 해. 좋아해)라고 얘기해.

조영남 그럼, 네 조 서방을 만난 것은 어떻게 해석하냐? 무슨 의미라고 생각하냐. 내가 생각하기에는, 너한테는 분에 넘치는 신의 축복이었다고 생각하는데.

양희은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즉각) 나는 그렇게 생각 안 해. 부부가 똑같지, 분에 넘치는 것이 어디 있어? 너무너무 울타리라는 것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으나 나한테는 그것이 안 주어졌는데, 그러다 그 사람을 만난 것이지. 울타리처럼. 좋은 것을 같이 누리고 살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는 정도.

조영남 네가 한 짓거리에 비해서 참 좋은 사람이 너한테 차례가 왔다고는 생각하지는 않아? 내가 조 서방을 봤을 때는 그렇거든.

양희은 형은 사람을 만나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어? 관통해? 그냥 직감으로 알아?

조영남 관통 안 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 다 타인을 관통하면서 살지.

양희은 틀려본 적 없어?

조영남 나는 틀려본 적이 거의 없어. 많지 않은 것 같아. 나는, 노래를 한두 소절만 들으면 그 사람의 성격·운명·과거·미래가 쭉~ 들어오는 것 같아.

양희은 그래? 그럼 나는 뭐야.

조영남 너는 아이언맨이지. 대처 총리야. 너의 음성에는 부드러움이 없거든. 다 너를 무서워해.

양희은 하하. 형이 진짜 무서운 사람이야. 사람들이 몰라서 그렇지. 바보 같은 뿔테 안경으로 그 눈빛을 가려서 그렇지.

조영남 너는 마지막으로 한 번 해보고 싶은 것이 뭐냐? 나는 기자들이 물으면, 사랑이라고 하는데.

양희은 나는 형이 끝까지, 끝내 포기하지 않고 사랑, 사랑, 사랑 하는 것이 용하다고 생각해.

조영남 하하하하. 대견스럽다!

양희은 엉. 형은 끝내 그 명제를 쥐고 있잖아? 나는 좋아. 형 편이야. 우리 아버지가 바람피워서 집이 풍비박산이 났잖아? 그래서 나는 형을 무지 좋아했는데, 형이 이혼하면서 싫어했거든. 또 사실, 나는 형을 굉장히 허무주의자라고 생각해. 말만 번지르르하지 마음 속에 크게 회오리바람이 없어. 근데, 그 회오리바람을 끝내 기다리면서 계속 사랑타령을 하는 거야. 죽기 전에 사랑이라는 것이 어디 한 번 나를 뿌리째 흔들어봐라, 이거 아냐.

조영남 하하하하. 나한테는 말이야. 희은아, 나한테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DNA가 교묘하게 반반 섞였다고 보거든. 너는 어떠냐?

양희은 나는 내가 아버지를 더 많이 닮은 줄 알았는데, 나이들어 가면서 우리 엄마를 더 많이 닮더라고요. 요새는 어머니를 모시고 살면서 나도 나이가 들면 엄마 같겠다는 생각을 해. 우리 아버지가 이북내기거든. 신교가 제일 먼저 들어왔던 진남포 출신이야. 거기서 서북청년사건을 겪고 혼자 내려와 다시 못 돌아간 것이지. 그리고 서른아홉에 집안을 ‘아작’내고 죽었잖아? 그런 아버지가 내게 심어준 결핍이 참 큰 것 같아. 어느 순간 내가 그냥 깨달은 것이, 내 반은 아버지한테서 온 것이니 내가 사는 동안에는 아버지도 같이 산다는 거야. 내 이 모든 형질의 반 몫은 친가 쪽이고, 반 몫은 외가 쪽일 테니까. 딸 셋을 문화적 감수성이 강한 인간으로 키운 것을 보면, 엄마와 아버지가 그 부분에서는 코드가 맞는 부부였던 것 같아. 자식들 마루에 앉혀놓고 탱고를 추신 분들이니까. 골동품시장에서 뭔가를 뒤져 사와서는 즐거워했고. 또 내가 처음으로 젖멍울이 생겼을 때 그 속옷을 사다 준 사람도 아버지였어. 아버지가 딸들한테는 참 끔찍했지.

조영남 아버지가 바람피운 것은, 그래도 이해가 안 돼.

양희은 미쳤어? 내가 왜 이해해야 해? 내가 여자인데. 여자와 남자는 서로 이해 못한다고 봐. 오해나 하지 않으면 다행이야. 그런데, 내가 서른아홉을 넘기면서 비로소 아버지를 껴안게 되더라. 내가 아버지보다 훨씬 많이 살고 나니까 서른아홉의 사내가 굉장히 어린 남자더라고. 다른 여자를 좋아할 수 있겠어. 좋아하는 모든 것과 그리워하는 모든 것을 북에 놔두고 혼자 내려왔잖아! 우리 아버지의 새 여자가 이북 여자였거든. 우리 엄마는 서울내기였고. 그런 면에서 코드가 통하지 않았을까 싶어. 하지만, 내가 아버지보다 덜 살았을 때는 아버지 용서 못했지.

“결핍이 나의 가장 큰 에너지이자 힘”

조영남 나도 너희 아버지 뒤를 밟았는데, 나도 이해해 줘야 하지 않냐!

양희은 내가 아까 결론내지 않았어? 나는 형 편이라고.

조영남 오늘의 결론은, 예수가 부활했다는 것을 네가 믿고 있다는 건가? 그럼 너도 죽으면 부활하는 거야?

양희은 저는 꼭 그렇지는 않더라도, 아무튼 예수가 나와 상관이 있다는 것을 믿는 것이지. 부활이나 그 나머지 모든 것은 알아서 하겠지.

조영남 죽어서도 개런티가 된다….

양희은 개런티! 그것도 하실 분이 알아서 하시겠지.

조영남 너는 신학공부 하고 싶다는 생각은 안 해봤냐?

양희은 나는 공부가 싫어.

조영남 어, 그래? 그럼, 내가 공부한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냐?

양희은 형은 범생이라니까, 뭘 그래. 그래서 라디오도 하는 거야. 말년에.

조영남 하하하. 수고했다, 아, 멋있었어.

양희은 결핍이 나의 가장 큰 에너지다. 나의 마지막 말이야. 나는 그걸로 살아.

조영남 우아~. 좋다.

양희은 없는 것이 이 세상에서 가장 센 재산이잖아. ‘배 째라. 없다. 그래~. 죽여라.’ 나는 그거야. 그것이 나 사는 힘이야.

조영남 ….

오효림 월간중앙 기자 / 사진 권태균 사진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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