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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중앙비엔날레"등 서울.경주서 잇단 전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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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다양한 매체와 사물을 결합,작가의 의도를 자유롭게 표출하는 설치미술.캔버스와 물감에 의존하는 평면회화의 한계를 넘어 3차원의 공간을 무대로 하는 설치미술이 현대 화단에서 강세를 보이기 시작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난달 20일 막이 오른 광주비엔날레에서도 설치미술은 본전시출품작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는 위세를 떨쳤으며 미국의 미술전문지 아트뉴스(ART news)9월호도 오늘날 세계미술의 현황을 『추상미술이 후퇴하는 대신 설치미술이 「서정 적 표현」의 수단으로 재탄생하고 있다』고 진단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설치미술의 흐름과 현주소를 보여주는 국제 전시회가 서울과 경주에서 각각 열려 미술 애호가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우선 지난달 26일 서울 호암갤러리에서 공개된 「95 중앙비엔날레 국제조각.설치미술 초대전」(20일까지)은 설치미술의 주요 흐름을 국내외 중견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검증하는 자리다.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선보인 신진작가들의 입체(조각.설치)작품 공모전인 「95 중앙비엔날레」(12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의 특별전으로 열린 이곳에는 한국을 포함한 7개국의 저명작가 16명이 참여했다.
가장 주목을 끄는 작가는 미국의 브루스 나우먼.나우먼은 브론즈.네온.암석.비디오등 다양한 매체를 실험적으로 도입하며 일반회화는 물론 조각.설치작품등을 폭넓게 구사,이 시대 최고로 인정받는 작가.지난 93년에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시 작된 회고전이 올봄 미국 뉴욕을 거쳐 내년 가을 스위스 취리히에서 끝날 정도로 명성을 떨치고 있다.
이번에 그가 선보인 작품은 비디오설치 『인류학/사회학』(91년작)과 조각 『구석에 놓인 다섯개의 분홍머리』(92년작)등 두점.전시장 외부에 따로 마련된 대형공간의 3개면에 사람의 얼굴을 투사하고 「인류학이여 저에게 음식을 주세요… 」등의 육성을 삽입한 『인류학/사회학』은 관객들에게 원초적인 공포심을 유발하면서 현대미술의 기능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바로 옆방에 자리한 한국작가 이상현(李相鉉)의 작업도 흥미롭다.그는 흙을 잔뜩 깔아놓은 전시장 중앙 화면에 우주의 여러 모습을 담은 슬라이드를 투사하고 여기에 특수 제작한 움직이는 기계의 그림자를 겹쳐놓은 작품 『문워커』로 과학적 이면서도 신비스런 분위기를 연출한다.
참가작가 16명을 하나로 묶는 뚜렷한 공통점은 찾기 힘들다.
이들은 모두 평소 우주와 인간,자연과 문명,작가와 외부세계의 관계에 대한 사색을 끝없이 거듭하는 모습을 보여왔기 때문이다.
예컨대 미국작가 제임스 터렐의 경우 어두컴컴한 공간에 단지 희미한 붉은 빛을 투사하는 단순한 구성으로 관객을 명상의 세계로 자연스럽게 인도한다.
따라서 이들은 수많은 오브제를 경쟁적으로 도입하며 과열된 모습을 노출하는 현대 설치미술의 추세와는 달리 단발성 실험의 차원을 넘어 작품과 공간의 관계를 차분하고 진지하게 성찰하고 있다. 경주 선재미술관에서 지난달 29일 개막된 「프랑스미술-오늘의 시각전」(내년 1월10일까지)은 현재 파리에서 활발한 작업을 하는 30대 유망작가 9명의 작품을 모은 전시.현대미술의주도권을 뉴욕에 넘겨준 문화대국의 자존심을 지키려는 젊은 작가들의 의욕이 넘친다.참가작가 가운데 8명이 현지에 내려와 작품설치에 나서는 열성을 보였다.
관람객이 다가서면 태양열판과 컴퓨터에 의해 바람소리등 자연의음향이 퍼져나오는 테크노아트부터 60여점의 수채화와 평면작업을하나로 엮은 전통적인 작품까지 다양한 형식을 동원,현대문명의 문제점을 여러 각도에서 꼬집고 있다.
위의 두 전시는 국제전으로 보기에는 다소 규모가 작은 편.하지만 작가의 지명도 혹은 열성으로 볼 때 세계화를 모색하는 우리 현대미술에 적잖은 암시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朴正虎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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