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국정감사와 프로정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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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국회는 왜 필요한가.말할 것도 없이 한편으로는 민의를 수렴해법률을 제정하는 일과 다른 한편으로는 행정부를 감시.감독하는 일을 수행하기 위해서다.이 두기능은 어느 하나도 소홀히 할 수없는 국회의 기본 책무다.
특히 국회가 행정부를 감시.감독하는 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면 국정은 비리와 무사안일의 난맥상을 노정하게 되고 국민은 정부로부터 홀대받게 된다.그렇기 때문에 국회는 국정감사를 통해 지난 한햇동안의 행정실태를 빠짐없이 점검하고 잘못 된 점이 있으면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하며 마땅히 시정책도 촉구해야 한다.그래야 행정권의 남용과 타락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국정감사는 국회의 권한이라기 보다는 조금도 게을리할 수 없는 의무이자 책임이다.만약 감사에 임하는 국회의원들이 이러한 책임감과 사명의식을 망각하고 지엽적인 정치현안에 매달려 소모적인 정쟁(政爭)이나 일삼는다면 그것은 국민의기대를 저버리는 민의에의 배반행위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솔직히 말해 오늘의 여야 정당들은 내년에 있을 총선과 그 후년에 있을 대선을 지나치게 의식한 나머지 민생문제의 해결보다는정국주도를 겨냥한 전략개발에 역점을 두고 있으며 이번 국감도 이와 같은 당리당략의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는 것 같다.
국감이 끝나면 곧이어 총선에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여야 국회의원들은 너나없이 국감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부각시키려는 몸짓을 노골적으로 내보이고 있다.이러한 노력이 밀도있는 국정감사로이어지지 못하고 한갓 인기영합적인 소영웅주의로 빗나간다면 이번국감도 하나의 형식적인 연례행사로 수박겉하기식으로 끝나고 말 것임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과거의 경험에 비춰 볼 때 총선을 앞둔 마지막 국감은 으레 여야격돌과 국회공전이라는 소극(笑劇)을 연출하게 마련이고 막후에선 이해득실을 저울질하는 움직임들이 감사의 본질을 빗나가게 했던 것이다.이제 막 진행되고 있는 14대 국회 국정감사에 즈음해 이처럼 우려의 말을 하는 것은 이제부터는 국감이 정쟁이나인기관리의 볼모가 돼서는 안된다는 바람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말할 것도 없이 국정감사는 정치현안과 분리돼야 할 뿐만 아니라 책임추궁의 차원을 넘어 대안제시도 해야만 본래의 취지를 살릴 수 있다.
따라서 국정감사는 마땅히 고도의 전문지식을 요구하는 의정활동의 한분야로 인식돼야 한다.세계화와 정보화가 강조되는 오늘의 전문화시대에는 더욱 이 점이 중시돼야 한다.사실 감사에 임하는의원은 보통사람들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서류를 검토해야 하고 전문가도 해독하기 어려운 자료와 통계수치를 분석해야 한다.이렇게 복잡하고 어려운 일을 효율적으로 수행하려면 고도의 전문지식과 프로정신이 필요한 것이다.
이 점을 고려해 어떤 의원들은 보좌관들과 숙식을 함께 하면서자료검토와 대안모색에 밤을 지새운다는 흐뭇한 소식도 있다.별 노력도 없이 호통이나 치고 폭로성 발언 하나로 공을 세우려는 의원들이 대부분인 풍토속에서 이처럼 전문가의식과 프로정신으로 국감에 임하는 의원들이 있다는 것은 퍽 다행스러운 일이다.
우리는 이와 같은 노력을 기울이는 의원들에게 경의와 찬사를 보내면서 다른 의원들도 이처럼 진지한 자세를 가져줄 것을 바라마지 않는다.그리하여 프로정신을 갖춘 국회의원이 이번 국정감사를 통해 새로운 정치스타로 떠오를 것을 기대한다 .전문성과 프로정신을 갖춘 국회의원이 국정감사를 통해 국정을 바로잡아 나가게 될 때 우리의 의정은 비로소 사회정치적 기회비용을 상쇄하고순기능적인 기대성과를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高麗大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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