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성화 폭력 논란과 역지사지의 지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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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베이징 올림픽 성화 서울 봉송 과정에서 한국인에게 폭력을 행사한 중국인 유학생에 대해 신청된 사전구속영장이 기각됐다. 피의자가 범죄 사실을 인정하고, 동영상 등 증거 자료가 확보돼 있는 데다 출국금지 조치가 내려져 있어 증거인멸이나 도주의 우려가 없다는 것이 법원 측 설명이다. 고심 끝에 내린 사려 깊은 결정이라고 본다. 격앙된 감정을 가라앉히고 냉정하게 이번 사태를 돌아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상대국의 법을 무시하고 폭력을 휘두른 행위는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실정법에 따라 처리해야 마땅하다. 다만 일부 극소수의 불법 행동을 대다수 중국 유학생의 적법한 행동과 구별하지 못하고, 감정을 실어 대응하는 것은 옳지 않다. 일부 학생이 잘못을 저질렀더라도 그들이 국내에 있는 3만여 중국 유학생, 나아가 13억 중국인 전체를 대표할 순 없다. 감정을 배제하고, 법에 따라 원칙대로 처리하면 그만인 것이다.

분노한 중국 젊은이들을 일컫는 ‘펀칭(憤靑)’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세계 각국에서 커지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행동을 일부 서방 언론이 주장하듯 맹목적 애국주의나 편협한 민족주의의 발로로만 바라보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다. 중국이 개혁·개방에 착수한 1980년 이후에 태어나 고도 성장의 혜택을 누리며 자란 이른바 ‘바링허우(八零後) 세대’의 자부심에는 충분히 공감할 구석이 있다고 본다.

베이징 올림픽은 ‘대국(大國)’ 중국의 부활을 상징하고 있다. 중국 젊은이들의 정당한 자부심과 자존심을 중화주의라는 일차원적 프리즘으로 재단하려 하는 것은 잘못이다. 인권과 민주주의에 대한 보편적 문제 제기를 중국 정부가 21세기의 ‘황화론(黃禍論)’으로 매도하는 것도 문제다. 60년대 문화혁명이나 89년 천안문 사태에서 드러났듯 펀칭의 칼날은 어느 순간 체제 내부로 향할 수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균형 잡힌 시각으로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절실하다. 역지(易地)의 지혜로 성화 폭력 논란을 끝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