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우영이 남긴 말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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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호 06면

“나는 펜이고 펜이 곧 나다.”
-고우영 선생이 남긴 말

*역사의 갈피 속에 숨겨진 감정을 찾아 이야기를 살아 있게 만드는 것, 나의 펜과 내가 지금껏 풀고 있는 숙제다…만화는 당의정(糖衣錠)이다. 생각이나 지식을 전하는 글을 쉽게 읽혀지는 도구로 바꾸는 힘을 가진 것이 만화다.
-미완성으로 남은 『자서전』중에서

*정사(正史)는 지루하다. 그래서 재미가 없다. 그 대신 그늘 속의 이야기, 즉 야사(野史)는 흥미 위주로 수정된…오백 년 동안 구전되어 오던 그 이야기들을 그림 섞어 다시 만들어 본다. 가끔씩 거짓말도 섞고 짓궂은 음담도 가미할 생각이다. 우리 어른들끼리 마주 앉아 그 가운데 소주와 안주 놓고 낄낄거리는 식으로 하자. 과부 업어가는 대목에서는 함께 웃어주고 술 한잔, 오징어다리 한 개 씹고 하자. 스님께서 파계하신 얘기를 그릴 때는 곡차 마시며 하자. 결국 그러노라면 얼큰히 취해 유쾌해지고 오백 년 조선조의 등줄기가 그런대로 모양을 갖춰주겠지.
-1991년 『오백년』(후에 『연산군』과 묶어 『조선야사실록』으로 출간) 연재를 시작하며

*나, 살아온 길을 되돌아보자면 ‘만화’라는 것을 떼어놓고는 남는 것이 아무것도 없을 것 같다. 젖 떼고 나서 금방 배운 것이 만화요, 지금까지도 계속하면서 호구지책으로 삼고 있는 것 또한 이 일 뿐이다…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18년을 연재(극화 신문연재)하면서 소재를 얻기 위한 노력은 24시간도 모자랐을 정도였다. 거짓이 아니라 꿈에서 있었던 일도 그럴듯하면 줄거리에 옮긴 일이 비일비재하다. 헤밍웨이처럼 화장실에 필기도구를 가지고 들어가는 습관도 그때부터 생긴 것일게다. 헤밍웨이를 말했지만 나는 그의 경험주의도 흉내 내려고 했다. 만화가는 수직의 깊은 지식보다 평면으로 넓고 많은 잡학상식이 더 필요하다…20세기를 주마등처럼 흘려 보내며 다음 세기에는 좀 더 견문 쌓기를 해볼 생각이다. 만화가는 늙어서도 뛸 수 있기 때문이다.
-1999년 11월 칼럼 ‘나의 20세기’ 중에서

*아이(『삼국지』)는 당시 군용트럭 비슷한 것(군부의 검열)에 깔려 팔·다리·몸통이 갈갈이 찢기는 사고를 당하게 된다. 아비 되는 내가 애통했던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만 그보다 더 절통했던 것은 그 불구가 된 아이를 병원에 데려가 치료해줄 엄두를 못 내고 24세의 청년이 되기까지 길거리에서 앵벌이를 시켰다는 사실이다.
-2002년 10월 대표작 『삼국지』를 24년 만에 무삭제 완전판으로 복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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