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책읽기Review] 권정생 1주기를 기리며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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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권정생의 마지막 동화 『랑랑별 때때롱』의 한장면. 지구별의 새달이와 마달이가 누렁이 꼬리를 붙잡고 랑랑별로 올라가고 있다.

권정생 작가의 1주기를 맞아 관련서들이 잇따라 출간됐다.

장편동화 『랑랑별 때때롱』(정승희 그림, 보리, 200쪽, 1만2000원)은 권정생의 마지막 작품. 2005년 12월부터 2007년 2월까지 어린이 잡지 ‘개똥이네 놀이터’에 연재했던 것으로, 권정생의 작품 중 보기 드문 판타지물이다. 주인공은 지구별의 새달이와 마달이, 랑랑별의 때때롱과 매매롱이다. 이들은 투명망토를 입고 랑랑별의 500년 전 세상으로 날아간다. 모든 것이 과학으로 이뤄진 세상이었다. 로봇이 농사를 짓고, 자동차도 컴퓨터로 움직이고, 아기도 기계에서 태어난다. 최고의 유전자를 모아 만든 맞춤형 인간이어서 열 살만 되면 세상 이치를 다 알지만, 사람들은 행복하지 않다. “갑자기 사람이 마음대로 생명의 질서를 깨뜨린다면 앞으로 큰 재앙이 닥칠 것”이란 머리말에서 드러나듯 자연의 질서를 거스르는 과학 문명을 비판한 책이다.

『우리들의 하느님』(녹색평론사, 320쪽, 1만원)은 1996년 나온 산문집의 개정 증보판이다. ‘녹색평론’에 실렸던 고인의 글과 추모글을 더해 나왔다. 고인은 9·11 사건 이후 “지난날 미국인과 영국인이 저질러온 수백 년간의 폭력으로 지상의 수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참혹하게 죽어갔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얼마나 또 슬프게 고통스럽게 살아왔는지 깨달아야 한다”라는 글을 남겼다. 2004년 김선일씨 피살 사건을 놓고는 “우리 인간들의 풍요에 대한 끝없는 욕망이 죄 없는 김씨를 죽이게 한 것”이라고 말했다.

『권정생의 삶과 문학』(원종찬 엮음, 창비, 420쪽, 2만원)은 본격적인 권정생 문학연구서. 위기철·이재복·선안나·엄혜숙 등이 그의 작품을 기독교 아나키즘·생태주의·페미니즘 등의 관점에서 분석했다.

고인의 일대기를 재조명한 청소년용 평전 『권정생-동화나라에 사는 종지기 아저씨』(이원준 지음, 작은씨앗, 240쪽, 1만원)에는 『랑랑별 때때롱』의 뒷얘기도 실렸다. 잡지 ‘개똥이네 놀이터’ 2007년 2월호에 실린 ‘때때롱의 마지막 선물’편은 때때롱네 할머니가 죽은 것으로 마무리됐다. 하지만 권정생은 왜 자신이 할머니를 죽게 했는지 차츰 후회를 했고, 결국 출판사에 전화를 걸어 자신의 심정을 털어놨다고 한다. 부랴부랴 새 책 『랑랑별 때때롱』을 다시 뒤져봤다.

“이곳 랑랑별 식구들도 모두 잘 있다. 할머니도 잘 계신다. 1년 전에 너희들이 다녀가고 나서 아직도 너희들 생각만 하신다.”(190쪽)

고인의 뜻에 따라 이제 할머니는 잘 계신다. 문득 하늘을 쳐다보게 됐다. 아이들 생각만 하실 권정생 할아버지. 역시 잘 계시리라. 

이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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