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BOOK북카페] 못믿을 게 미술품 진위 감정?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4면

위작과 도난의 미술사
이연식 지음,
한길아트,
344쪽, 1만5000원

“가짜 작품이라도 미술관에 얼마 동안 걸려있으면 진짜 작품이 되는 겁니다.” 역사상 최대의 미술품 위작자로 알려진 엘미르 드 호리의 말이다. 진위를 구별하는 감식 시스템이 얼마나 믿을 수 없는지를 풍자한 것이다.

이 책은 위작과 도난이라는 미술계의 이면을 다루고 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나 뭉크의 ‘절규’가 유명한 것은 작품성 때문이지만 도난사건이 명성을 더 높이는 계기가 됐다. 미술품 도난이나 위작사건은 종종 영화의 소재가 될 정도로 흥미진진하다.

저자는 위작과 도난에 대해 다른 입장을 드러낸다. 우선 미술품 절도범에 대해선 미술품 파괴범이라고 강력 비난한다. 영화에서처럼 낭만적인 미술품 도둑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위작에 대해선 어느 정도 이해해준다. 미술계에 입힌 손실에 대해선 단죄를 받아야 하지만 미술계의 가치 판단과 감식안에 대한 도전으로 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1911년 발생한 ‘모나리자’ 도난사건, 프로방스 지방에서 폭력조직이 벌인 세잔과 피카소 작품 도난사건, 절도범이 훔쳐 25년이나 간직했던 ‘데번셔 공작부인의 초상’(게인즈버러 작) 도난 사건 등 역사적으로 유명한 미술품 절도사건을 다루고 있다.

위작의 세계는 도난사건보다 더 흥미롭다. 화상과 전문 감정인을 속이는 정도를 넘어 진짜 원작자로부터 ‘자신의 작품’이라는 보증서를 받아낸 경우도 있다.

저자는 서울대 미대 서양화과와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이론과 전문사 과정을 졸업했다. 『미술영화 거들떠 보고서』(지안출판사)라는 책도 낸 적이 있다. 이 책은 미술을 다룬 영화, 드라마도 다수 인용해 일반인들이 쉽게 따라갈 수 있다.

‘모네’·‘고흐’전 등 최근 인기를 끈 미술 전시회를 가보면 아이들에게 작가의 작품세계에 대해 열심히 설명해주는 부모들을 흔하게 볼 수 있다. 하지만 미술을 전공하지 않은 경우 대개 중·고교 미술 교과서 수준의 지식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위작과 도난의 미술사』를 읽고 나면 아이들에게 해줄 말이 훨씬 풍부해질 것으로 보인다. 미술의 ‘그늘’을 말이다.

정철근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