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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주연의 패션 리포트] 웨딩드레스, 거품드레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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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면

갭(GAP)과 바나나 리퍼블릭(Banana Republic)· 클럽 모나코(Club Monaco)가 수입된 이후 이제 자라(ZARA)까지 국내에 상륙했다. 주머니에 10만원을 넣고 가서 실용적이면서도 꽤 그럴듯한 패션 아이템을 두세 개 정도는 건질 수 있는 브랜드들이 계속 국내로 들어오는 추세다. 제이 크루(J. Crew)는 이와 비슷한 대중적인 메가(Mega) 브랜드 중 하나로 아직 국내에 정식으로 수입되지 않았다. 언뜻 보면 비슷한 ‘치노 팬츠(Chino Pants: 면 소재의 앞주름이 잡힌 편안한 바지, 보통 베이지색이 많다)’나 간단한 티셔츠 정도 살 만한 브랜드겠거니 하겠으나, 이 브랜드에 특별한 점이 하나 있다. 바로 ‘웨딩 라인’을 따로 운영하고 있다는 점이다.


제이 크루는 1000달러(약 100만원)가 채 넘지 않는 예산으로도 충분히 구입할 수 있는 웨딩드레스를 비롯해 그에 어울리는 구두와 주얼리, 이브닝 백을 갖추고 있다. 이 외에도 신부 친구들이나 들러리들이 저렴하면서도 멋진 스타일들을 꾸며낼 수 있도록 제안한다. 국내에서도 온라인 쇼핑 사이트의 해외 배송 서비스를 이용하면 구입이 가능하다. 하지만 우리나라도 저렴한 가격대의 ‘기성복 웨딩드레스’ 시장이 있다면 얼마나 실용적일까. 웨딩드레스 하면 기본적으로 몇백 만원은 줘야 하며 그나마도 단 하루 동안 빌려 입고 마는 게 일반적인 우리네 상황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많은 사람이 결혼식을 ‘내 생에 가장 중요한 이벤트’라고 여기기에, 웨딩 사업은 가장 거품이 많은 비즈니스가 될 수밖에 없다. 구청이나 교회에서 간단히 신고를 하는 형식적인 절차로 생각하는 서양과는 크게 다르다. 그러나 세대가 변하면서 최근에는 결혼을 준비하는 젊은이들의 생각도 점차 바뀌어 가고 있다. 사돈의 팔촌까지 아는 이들을 총동원해 축의금을 모금(?)하는 ‘형식적 이벤트’는 더 이상 거부하는 것이다. 대신 진심으로 축하해 줄 가까운 몇 명만을 초대하고, 절약한 예산은 결혼 이후 필요한 살림살이에 더 투자하겠다는 ‘실속파’ 예비부부들이 늘고 있다.

최근 결혼한 패션 에디터 한연구씨는 웨딩드레스를 자신의 스타일에 맞추어 디자인하면서도 큰돈이 들지 않았다고 자랑한다. “빌리는 데만 적어도 200만원은 드는 게 웨딩 드레스더라고요. 하지만 저의 경우에는 평소 저의 스타일을 잘 표현할 수 있는 디자인을 제 스스로 선택했어요. 패턴대로 만들어 주는 맞춤집에 원단과 함께 맡겼더니 큰 돈 안 들이고도 마음에 드는 드레스를 입을 수 있었어요. 게다가 결혼식이 끝난 지금 제 옷장에 드레스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는 것도 의미있고요.”

만들어 입는 드레스가 유행이라면 그 스타일은 어떤 게 좋을까. 요즘은 날씬하게 떨어지는 실루엣에 우아한 디자인이 트렌드를 이끈다. 얼마 전 뉴욕에서 열린 웨딩 패션쇼(Bridal Fashion Week)에서는 오스카 드 라 렌타(Oscar de la Renta), J 멘델(J Mendel) 같은 디자이너 브랜드의 최고급 드레스에서 대중적인 드레스까지 H라인으로 흐르는 슬림한 드레스들이 공통적으로 선보였다. 최근 주목을 끌었던 할리우드 여배우 니콜 키드먼이나 케이티 홈스(톰 크루즈의 신부)가 입었던 드레스들도 동화 속 공주가 입는 화려하게 펼쳐지는 드레스가 아닌 소박하고 슬림한 실루엣의 드레스들이었다.

길어야 30분에서 한 시간인 결혼식을 위해 얼마나 불필요한 비용이 쓰이는 것인가를 생각해 보면, 딱 필요한 만큼만 세련되고 멋진 드레스를 입는 것이 훨씬 지혜롭게 느껴진다. 언론을 통해 보도되는 스타들의 화려한 결혼식도 알고 보면 대부분 브랜드들의 협찬으로 이루어진다. 화려한 결혼식을 치르느라 정작 식이 끝난 뒤엔 한없이 빈곤하고 지치는 신혼만 남게 되지 않을까.

강주연 패션잡지 엘르(ELLE) 부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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