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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해는뜨고 해는지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5면

제2부 불타는 땅 1945(11) 수풍발전소 7호기가 발전을개시했던 그해 1월,시인 이육사는 북경의 감옥에서 죽음을 맞았다.가슴을 열고 걸어볼 조국땅의 봄을 그토록 그리워했던 시인의처연한 옥사였다.
1944년은 그렇게 열렸다.
총동원법에 의해 광산과 군수공장에 끌려가는 무차별 징용이 시작되었다.모든 특별령이나 규정 그리고 특별례라고 공포되는 것들에는 전시(戰時)라는 이름이 필수적인 것이 되었다.조선전시민사특별령,조선총독부 재판소령 전시특별령 공포,조선전 시형사특별령… 농업은 생산책임제로 들어갔고 조선여자청년련성소 규정이 제정되었다.패전을 앞에 둔 일본의 이 단말마 속에서 또 한 사람의죽음이 있었다.조선어학회 사건으로 국어학자 한징(韓澄)이 함흥형무소에서 옥사했던 것이다.
3월에 들어서면서 그러나「전시」라고 이름붙였던 조항들은「결전」이라는 말로 서서히 바뀌어 갔다.학도동원 비상조치 강화에 이은 결전비상시 조치요강의 공포가 그 시초였다.
학도동원 비상조치에 의해 학교별로 학도동원기준이 발표되었다.
그렇게 하여 제1지원병 훈련소 13기생과 제2지원병 훈련소에서2기생이 배출되어 전선으로 떠났다.
민족의 신음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그 캄캄함 속에서 그 무렵 매일신보에 몸담고 있던 저널리스트 조용만은『광산의 밤』이라는 희곡을 발표하고 있다.개인의 이익과 신민(臣民)의 길 가운데 조선민족이 가야 할 길은 오로지 대일본 제국을 위 해 몸을 바치는 것이라는 단말마였고 절규였다.
15살의 나이에도 항공병을 지원하는 만돌이,자신은 광부로 일하면서 그 동생이 항공병이 되도록 도와주는 형 길돌이,군수공장에서 전쟁물자를 만들어 내는 사윗감 기무라,일본을 위해 목숨을바쳐야 한다는 대의를 위해 만돌이 항공병으로 지 원하는 것을 돕는 그 어머니… 이것이 그가 그려내 이동위문공연에 쓰여진 희곡의 구성인물이었다.조선인이 그려낸 조선인의 모습이었다.
사립전문학교 재산은 몰수,차압되었다.한국인 간부와 교수들도 물론 추방되었다.제국 일본의 조선에 대한 말살정책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민족의 배움터 보성전문은 경성척식경제전문으로 이름을 바꿔야 했다.또한 총독부는 연희전문을 공업경영 전문으로 바꿔치웠다.이화여전과 숙명여전은 농업지도원양성소가 되어야 했던 시절,『광산의 밤』을 쓴 조용만은 바로 조선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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