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하게 뽑으면 탈 난다? 이명박 정부 ‘낙마의 법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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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석 청와대 사회정책수석이 낙마함에 따라 이명박 정부에서 물러난 고위 공직자가 네 명으로 늘었다.

대통령직 인수위 시절인 2월 18일 장관 후보자로 발표됐다가 각종 의혹으로 사퇴한 세 사람에 이어 청와대 수석비서관 중에서 첫 낙마자가 생긴 것이다. <그래픽 참조>

중도하차한 네 사람 사이엔 공통점이 있다. 모두가 인선 막판 시간에 쫓겨 발탁된 인사들이다.

이춘호 전 여성부 장관 후보자와 남주홍 전 통일부 장관 후보자는 야당과의 정부조직 개편 협상 결과 해당 부서가 ‘살아나면서’ 발탁됐다. 박은경 전 환경부 장관 후보자도 여성 몫으로 배정됐던 환경장관 적임자를 백방으로 수소문해 찾아낸 경우다.

하이라이트는 역시 박미석 수석이다. 2월 10일 청와대 수석 발표가 있기 전날 밤에야 박 수석은 사회정책수석으로 내정됐다. 직전까지만 해도 ‘박재완 사회정책수석 안’이 유력했으나 정무수석을 할 사람이 마땅치 않자 박 수석이 정무수석으로 이동하고 빈 자리를 박미석 수석으로 급히 채운 것이다.

이렇게 뽑다 보니 검증이 소홀할 수밖에 없었고 각종 의혹에 쉽게 노출됐다. 그래서 청와대에선 시간에 쫓겨 발탁하면 낙마한다는 ‘낙마의 징크스’ ‘낙마의 법칙’이란 말까지 돌고 있다.

이 대통령 취임을 전후해 장관 후보자만 세 사람이 낙마하자 당시 청와대는 “노무현 청와대가 보유했던 인사 파일에 제대로 접근할 수 없었고, 제한된 인력으로 수작업 검증을 하다 보니 어려움이 있었다”고 해명했다. 새 정부 출범 이전에 한 인사여서 어설픈 대목이 있었다는 것이었다. 이런 청와대의 해명을 100% 받아들이더라도 이번 박 수석의 낙마 과정에서 나타난 대응 미숙과 난맥상은 좀처럼 설명하기 힘들다.

재산 공개가 있었던 24일 청와대의 대응은 너무 부실했다. 진작부터 한나라당에선 “재산이 공개되면 여러 사람이 다칠 것”이란 소문이 계속 돌았다. 하지만 정작 청와대 수석비서관들은 ‘농지를 구입하면 반드시 직접 농사를 지어야 한다’는 현행 농지법 조항조차 모르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논란에 휩싸인 수석들은 “농지를 사더라도 영농계획서를 제출할 필요가 없다” “함께 구입한 사람이 경작하고 있는데 뭐가 문제냐”는 식의 해명을 쏟아냈다가 뒤늦게 주워담느라 곤욕을 치렀다.

특히 재산 공개를 앞두고 내부 검증 작업을 책임진 민정수석실 등 관계자들에게 여권 내부의 따가운 시선이 몰리고 있다.

대통령실 관계자들이 재산 공개와 관련한 대응을 논의한 23일 밤에도 현행 농지법 등과 관련된 문제 제기가 한 차례도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부실한 내부 검증이 부실한 해명을 낳았고, 해명이 의혹을 증폭시키는 악순환의 빌미를 청와대 스스로가 제공한 셈이다.

박 수석의 거취 논란은 결국 ‘자진 사퇴’란 형식으로 일단락됐다. 하지만 한나라당이 각종 채널을 통해 “27일이 박 수석의 사퇴 데드라인”이라며 청와대를 압박하지 않았다면 이 문제가 쉽게 해결되기 힘들었을 것이란 자성론도 청와대 안에선 나온다.

청와대엔 ‘후속 인선’이란 숙제가 떨어졌다. 청와대는 일단 ‘보건복지 분야에 탁월한 여성 전문가’란 인선 조건을 정한 뒤 내부적으로 무려 1만 명에 달하는 ‘여성 지도자 리스트’를 놓고 후임을 검토하고 있다. 초대 보건복지부 장관 물망에 올랐던 한나라당의 안명옥 의원과 김대식 동서대·김태현 성신여대 교수 등이 거론되고 있다는 전언이다. 당 일각에선 보건복지 분야 전문가인 박재완 정무수석을 사회정책수석에 기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지만 청와대는 일축하고 있다.

후임 인선 작업과 함께 청와대는 인사 검증을 강화하기 위한 대책도 마련하고 있다.

당장 주요 인사들에 대한 정부 존안자료를 최대한 활용하기로 했으며 정밀 검증을 위해 복수의 검증팀이 크로스체킹(교차 확인)을 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또 부동산 문제와 관련해 직접 현장을 방문해 점검하는 안을 추진키로 했다. 정부기록보관소에 보관돼 있는 노무현 정부의 2만5000여 명에 달하는 인사 파일을 열람하기 위해 절차 개선 작업도 추진하고 있다.

서승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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